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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의 꿈

shepherd2 2008. 10. 29. 17:37

느티나무의 꿈 [자유게시판 ] choidk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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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6

시오-Dream of Green
 
이 백 살 느티나무의 꿈

오늘은 동화를 보내드립니다. 어느 사외보에서 "짧은 동화"를 청탁을 해와 써본 것입니다. 이번 고향을 찾았다가 어머니와 느티나무를 두고 다시 도시로 떠나온 사람들에게 띄워드립니다.

나는 마을 앞에 서있는 느티나무입니다. 어림잡아 봄을 200번 쯤은 맞았습니다. 나는 마을의 숨소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아이 울음소리, 부부가 싸우는 소리, 송아지 울음소리, 상여 나가는 소리, 어머니의 기도소리, 불효자의 고함소리, 주막집 욕지거리, 손자를 얻은 노인의 너털웃음소리를 들으며 나이를 먹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나 그늘을 늘어뜨려 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내 품에서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결정했고, 아이들에게 글자도 가르쳤고, 굿도 하고, 제사도 지냈습니다. 어떤 때는 불효자를 벌주기 위해 마을 재판도 열었고, 해가 지면 처녀 총각이 은밀히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을의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의 태어남과 떠남을 지켜봤습니다. 떠가가는 사람은 맨 마지막으로 나를 쓰다듬었고, 돌아온 사람은 맨 처음 나한테 아는 체 했습니다. 거의가 나를 보거나 만지며 울먹였습니다. 이별과 만남이 내 앞에서 이뤄졌습니다. 나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턴가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믿기지 않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 많은 소리들이 마을에서 끊겨가고, 빈 집이 생겼습니다. 빈 집은 금방 주저 앉았습니다. 집들이 주저앉아 버리니 나만 멀대처럼 솟아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끝내 몇 년 전부터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겨 버렸습니다. 내가 태어난 이후 200년 동안에 처음있는 일입니다.

마을은 고요합니다. 사람들은 더이상 내 품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굿도, 제사도, 회의도, 재판도 열리지 않습니다. 나는 외롭습니다. 나는 더 이상 크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요즘처럼 삭풍이 불면 나도 모르게 흐느낀답니다. 정말 사람이 그립습니다. 날마다 꿈에 아이가 보입니다. 이번 봄에는 제발 누군가 돌아오겠지요. 그렇지요?

〈김택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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