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곳

설악산 12선녀탕 르뽀

shepherd2 2009. 1. 12. 11:20

 

          설악산 12선녀탕 르포

절경 탕ㆍ소에 마음 앗기고 대장관 폭포에 넋 잃고 12선녀탕계곡~대승령~대승폭포~장수대 15km 등산로 보수 후 2년만에 재개방된 12선녀탕계곡 답사

 “급류에 휩쓸린 나무들, 옆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떠내려갈 것 같지요? 천만에요. 급류 위에 벌떡 서서 곤두박질을 치더라구요. 이렇게, 이렇게, 재주넘듯이 말이죠. 그렇게 한 번 넘어갈 때마다 허리가 절반씩 뚝뚝 부러지더니만 종내는 토막들이 돼서 흙탕물에 휩쓸려 사라지더라니까.”

쇠리에 살다가 장수대산장을 인수해 운영중인 김광현씨는 2년 전 7월15일 100년만의 엄청난 폭우가 내렸다는 당시 한계천의 살풍경을 그렇게 떠올린다. 집채만한 바윗덩이가 조약돌마냥 흙탕물 급류에 떼밀려 굴러가는 모습도 보였다. 쿵, 쿠궁 하며 그 바윗돌들이 하상의 암부에 부딪칠 때마다 천둥치는 것처럼 온 계곡이 울렸다고 한다.


▲ 12선녀탕계곡의 암반 계류 옆을 걸어보고 있는 취재진. 최근 며칠 내린 비 덕분에 물줄기가 굵다.
그렇듯 엄청난 급류가 휩쓸고 간 이후 처음 가본 설악산-. 그 참혹한 광경은 현실 같지가 않았다. 한계천 양쪽 남설악의 계곡들은 크건 작건 할 것 없이 모두 허옇게 게거품을 문 듯 산사태가 밀고 내려온 토사로 일그러져 있었다. 저기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자갈 평원에서 본 황량함이 여기 한반도의 절경 설악산 자락에서 재현될 줄은 꿈에조차 짐작할 수 없었던 일이다. 암반계류가 흐르던 한계천은 마구 되는대로 쏟아부은 공사 현장의 자갈밭 같이 변해 있었다. 장수대 아래 계곡의 아름다웠던 송림도 훌 몰아 뽑아내버린 것처럼 소나무들이 태반은 휩쓸려 내려갔고, 건너편의 지계곡은 대수술 후 꿰맨 듯한 제방공사로 흉물스러웠다. 

설악산 북사면쪽은 얼핏 보기엔 그나마 좀 나았지만 골병들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12선녀탕 계곡은 2006년 수해 이후 이태동안 출입금지되다가 올해 5월16일에야 등산로 보수작업이 끝나며 재개방되었다.

그간 이 절경 계곡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조바심 산행’은 다행히도 안도 속에 끝났다. 이런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식구 교통사고로 다리 부러져도 ‘그나마 그만한 게 천만다행’이라며, 세월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솜씨 좋은 장인이 평생 두고 쓸고 다듬어도 저렇듯 매끈하고 매혹적인 굴곡면이 나올 수 있을까 싶게 감탄스러웠던, 12선녀탕계곡의 상징인 복숭아탕의 복숭아 모양 바위굴 속엔 미처 뱉어내지 못한 찌꺼기인양 돌덩이가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하지만 큰 비가 몇 번 내리면 몇 해 가지 않아 깨끗이 청소될 것이다. 응봉폭 아래의, 대형 덤프트럭으로 실어와 쏟아버리고 간 것 같은 흙자갈 더미도 큰물이 몇 번 씻어내리면 원래의 희디흰 암반 풍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과 기대로 12선녀탕계곡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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