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로소 냉정을 되찾아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돌아보았다. 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가닥을 풀어 나가야 하나. 그렇지만 답이 없었다. 미치도록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순간적으로 참모총장이구나 싶어, 얼른 장호진 장군 보고 내가 없다고 대답하도록 부탁했다. 내 짐작이 딱 들어맞았다.
“아, 예. 각하 전화를 받자마자 가버렸습니다.”
장 장군이 내 부탁대로 얼렁뚱땅 때워 넘기고 있을 때, 문득 중령 계급장을 단 헌병장교 한 명이 부대장실에 고개를 쑥 들이밀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멈칫해서 도로 빼는 것이었다.
나는 가까이 있던 장교 하나를 보고, 얼른 뛰어나가 그 헌병중령을 꼭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잠시 후, 헌병중령이 쭈뼛쭈뼛 들어와 경례를 했다.
“귀관 여기 뭣하러 왔어?”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뭐야? 이 새끼!”
내가 버럭 소리지르자, 헌병은 엉겁결에 허리에 찬 권총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내가 번개같이 몸을 날려 한주먹에 때려눕혔다. 그러고는 찍어 누르며 다그쳤다.
“어디서 권총을 빼. 너 이 새끼, 나 장경순이 체포하러 왔지? 누구 명령을 받고 왔어?”
그러자, 헌병은 오히려 얼굴에 화색이 돌며, 사실은 공수특전단을 동원하러 왔다고 실토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혁명동지로서, 이중삼중으로 조직망을 가동한 데 따라 나름대로 사명을 띠고 공수특전단에 왔다가 나를 발견하자, 훼방꾼이 와 있구나 지레짐작하고는 제풀에 바짝 얼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악수를 했다. 혁명 직후 경북경찰청장으로 간 강상희 중령으로서, 세월도 흐르고 신분도 달라진 훨씬 이후에 그와 나는 어쩌다 간혹 만나면 그때 일을 상기하고는 우리 둘만 의미가 통하는 껄껄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아무튼 한참 그 복대기를 치고 나서 박치옥 대령을 찾으니, 그는 나를 피해 제1대대에 가서 대대장과 같이 있었다. 내가 전화로 소재확인을 하고는 거기서 뭐하느냐니까, 부대동원을 하고 있다고 둘러댔다. 그래서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출동하라고 심하게 다그쳤다.
낙하산부대 동원문제를 그럭저럭 해결하고 나자, 박정희 장군의 안위가 크게 걱정되었다. 그래서 차를 타고 출발해 6관구사령부로 향했다.
그런데, 쏜살같이 달리다가 문득 생각하니, 장호진 장군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미처 못하고 먼저 떠난 것이 마음에 걸렸다. 혁명에 공감하는 듯이 말하긴 했으나, 앞으로 어떻게 처신할지 확실한 대답을 받기라도 하고 헤어졌어야 마땅한데, 그렇게 못하고 헤어진 것이다.
그래서 차를 멈추고 조금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잠시 후에 장 장군 지프가 달려왔다. 그래서 붙들어 새삼스런 사례를 하고는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장 장군, 어쩔 거야? 지금 우리와 손잡고 국가개혁에 적극 동참하겠소, 아니면 뒷짐지고 구경만 할 거요?”
“미안하오. 난 그냥 들어가서 잘래.”
장 장군이 매우 난처한 듯이 선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 착잡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만 해도 혁명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아니, 실패로 끝날 확률이 더 컸고 보니 어찌 선뜻 가담할 수 있었겠는가.
“알겠소. 그럼 가서 주무시오.”
나는 선선히 장 장군을 보내준 다음, 다시 차를 몰았다.
6관구사령부에 도착해 막 들어가려다가 육군헌병감 조흥만 준장과 마주쳤다.
그는 군고위층의 명령을 받고 박정희 장군을 체포하러 6관구사령부에 왔다가 막상 박 장군을 만나자 그의 기에 눌려 감히 체포할 엄두를 못 내고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되어 나오다가 나를 만난 것이었다.
잘 되었구나 싶었다. 그를 붙들고 늘어졌다.
“조 장군, 우리끼리 한 번 피를 흘려보겠어, 아니면 협조를 하겠어?”
내 기세에 질렸는지, 그는 협조하겠다고 순순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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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6거사 3일후 국립묘지 참배에서 선언문을 낭독하는 장도영 총장. 장도영 장군은 5.16에 대해 찬성이나 반대를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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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한강대교 쪽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혁명군 일부와 이들의 시내 진입을 저지하려는 헌병대 사이의 총격전이었다. 조 준장은 즉시 출동 헌병대 지휘관에게 전화를 걸어 병력을 철수시켰다.
나는 조 장군에게 악수하며 고맙다고 사례하고는 그와 헤어져 사령관실에 들어갔다.
6관구사령관 서종철 소장과 참모장 김재춘 대령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비상사태를 당하여 갈피를 잡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그러니 방 안의 팽팽한 긴장감은 거의 폭발직전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나타나자, 내 기세가 하도 험악해 보였는지 분위기가 약간 가라앉았다.
나는 서종철 장군한테 경례를 했다.
“각하, 수고하십니다. 박정희 장군은 어디 계십니까?”
“여기 없소. 조금 전에 떠났소.”
그러자, 김재춘 대령이 박 장군은 해병대 병력을 동원하러 갔다고 알려주었다. 김포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 제5여단이 혁명군에 동참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박 장군이 아직은 무사하다는 사실에 적이 마음이 놓였고, 해병대까지 출동한다면 한판 제대로 붙기는 붙는구나 싶어 한결 희망이 솟구쳐 올랐다.
김 대령은 혁명주체의 한 명이지만, 당시 그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죽을 지경이다가 내가 나타나자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었다고 나중에 토로했다.
나는 서종철 장군한테 요구했다.
“각하, 죄송하지만, 참모총장 각하께 전화해서 저 좀 대주시지요. 제가 직접 걸면 받지 않으실 겁니다.”
서 장군은 다이얼을 돌려 장도영 장군을 부르더니 수화기를 나한테 넘겼다.
“각하, 장경순입니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아니, 장 장군. 아직도 거기 있는 거요?”
“곧바로 각하 뵈러 가겠습니다.”
“여보, 이거 왜 이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까 돌아가라고, 제발!”
“제가 돌아가고 말고는 다음이고, 먼저 각하를 뵈어야 합니다.”
장도영 장군은 또 전화를 딸깍 끊었다.
어쨌든 박정희 장군의 안전을 확인했으니, 내가 거기 더 머물러 미적거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서 장군에게 경례하고 곧바로 나왔다. 박 장군으로부터 부여받은 또 하나의 임무, 장도영 참모총장을 만나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