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스크랩] 세계문화유산 - 종묘(宗廟)

shepherd2 2009. 5. 11. 15:29

 

 

 

   옛 왕조의 드라마를 보면 나라에 어려운 일이나 변고가 있을 때 임금조차도 흔히 종묘사직을 뵐 낯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종묘(宗廟)는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셔 놓은 곳이며, 사직(社稷)은 땅과 곡식의 신께 제사를 드리는 단을 만들어 모신 곳이다.

이처럼 종묘는 사직과 더불어 국가존립의 근본이 되는 중요한 상징물이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에 있는 종묘(宗廟)는 조선시대 왕가(王家)의 신위(神位)를 봉안한 사당이다.

즉 종묘는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 그리고 죽은 후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유교사당이다.

종묘는 본래의 건물인 정전(正殿)과 별도의 사당인 영녕전(永寧殿)을 비롯하여 여러 부속건물이 있다.

 

  주말을 맞이하여 종묘를 찾았다. 서울지하철 1호선과 3호선 그리고 5호선의 종로3가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매표소다.

매표소 앞 정원에는 하마비가 서 있는데, 비석에는 大小人員下馬碑(대소인원하마비)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종묘를 참배하는 모든 백성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야하는 장소이다.

 하마비

 

 

   입장권(어른 1,000원)을 구입하여 안으로 들어간다. 길섶에는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표석이 있는데, 왼쪽의 자그만 연못에는 잉어가 노닌다.

물에 비친 숲이 상하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마침 치마저고리를 입고 모자를 단정하게 쓴 중년의 문화재해설안내원이 단체 팀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나중에 천안에서 도착한 단체 팀이 초등학생들이다. 필자도 이들과 함께 해설을 듣는다.

 세계문화유산 안내문

 

 연 못

 

   일본과 중국에서 온 관광객이 이외로 많이 보인다.

사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외국을 방문하여 그 나라의 종묘에 관한 설명을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안내원은 해박한 지식으로 종묘와 사직을 열심히 설명한다. 아무리 쉬운 용어를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전문용어가 등장하기에 초등학생이 이해하기는 다소 어려울 것 같다.

직접 해설을 들으니 여러 가지의 관련지식을 처음으로 알게된다.

 해설을 듣는 어린이들

 

 미모의 안내원

 

 

   정문에서 종묘로 들어오는 문은 세 개가 있다. 중앙의 문은 죽은 자(神)가 들어오는 문이고,

왕을 비롯한 고관대작들은 동쪽인 오른쪽 문을, 신하들은 서쪽인 왼쪽 문으로 출입한다고 한다. 

 뒤돌아본 종묘정문(돌길의 가운데는 신의 출입문이다)

 

 

   이제부터 종묘를 답사해보자. 망묘루는 제향(祭享)때 임금이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고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先王)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부쳐진 이름이다.

 망묘루

 

 

   종묘에는 특이하게도 공민왕 신당이 있다. 망묘루 동쪽의 별당으로 고려 31대왕 공민왕을 위하여 종묘 창건 시에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신당 내부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한자리에 있는 영정(影幀)과 준마도(駿馬圖)가 봉안되어 있다.

 공민왕신당

 

 

   어숙실은 정전 동남쪽에 위치하고 재궁(齋宮)이라고도 하며 국왕이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안내원은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고 어린이들은 처마아래에 나란히 줄지어 앉아 있지만 벌써부터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제멋대로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들은 안내선생님으로부터 혼이 나기도 한다.

 

 

   고궁에 가면 건축물 앞에 큰 화로 또는 솥처럼 생긴 물건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다름 아닌 "드므"이다.

"드므"는 "넓적하게 생긴 큰 독"이란 뜻의 순수한 우리말로 그 안에 물을 담아 놓으면 불귀신이 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달아난다는 주술적 의미가 있으며, 화재가 났을 때 실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화재방지용 "드므"

 

 

   이제 종묘의 가장 주요한 건물인 정전으로 안내한다. 정전동문은 제례 때 헌관이 출입하는 문이다.

 정전의 동문입구

 

 

   정전은 태조 3년(1394)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짓기 시작하여 그 이듬해에 완성되었다.

태조는 4대(목조, 익조, 도조, 환조)의 추존왕을 정전에 모셨으나,

세종 때 정종이 죽자 모셔둘 정전이 없어 중국 송나라 제도를 따라 세종 3년(1421) 영녕전을 세워 4대 추존왕의 신위를 옮겨 모셨다.

 

   정전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08년 다시 지었고, 몇 차례의 보수를 통해 현재 19칸의 건물이 되었다.

정전에는 19분의 왕과 30분의 왕후를 모시고 있다. 조선의 왕이었으면서도

폭군이었던 연산군과 광해군은 종묘에 모시지 않았다고 하므로 모름지기 지도자는 나라를 잘 다스릴지어다.

 제관이 오르는 계단

 

 정전의 모습

 

 제관의 입시장소

 

 

   정전 뒤쪽으로 가서 보니 벽에는 창문이 없는데 이는 혼백은 정문을 통해서만 출입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대별로 증축한 부문이 각기 다른 색상을 보여주고 있어 구분이 가능하다.

 창문이 없는 뒤의 벽면

 

 

 

   정전남문은 혼백이 출입하는 곳이므로 사람은 다닐 수 없다. 남문에 서면 정전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는 실물이 더욱 크다. 초 광각 렌즈(10-22mm)를 이용하여 겨우 전체의 모습을 담았다.

 정전의 남문 안쪽

 

 정전의 전체모습

 

 방금 지나온 정전 동문

 

 정전의 서문 방향

 

 다른 각도에서 본 정전

 

 

   이제 마지막 전각인 영녕전으로 가 보자. 건축물의 배치는 정전과 대동소이하다.

다만 정전이 19칸인데 비해 이는 16칸이므로 그 규모가 약간 작을 뿐이다.

 영녕전 남문

 

 영녕전 중앙부

 

 영녕전 서문 방향

 

 

   영녕전(永寧殿)은 조선 시대 임금이나 왕비로서 종묘(宗廟)의 정전(正殿)에 모실 수 없는 분의 신위(神位)를 봉안(奉安)하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1608년 다시 지었다.

현재 16칸에 15분의 왕과 17분의 왕후 및 조선 마지막 황태자인 고종의 아들 이은(李垠)과 부인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정전 앞뜰에는 조선시대 83명의 공신이 모셔진 공신당이 있고, 중요무형문화재인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전해진다.

 영녕전 전경

 

 

   종묘는 동시대 단일목조건축물 중 연건평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크나, 장식적이지 않고 유교의 검소함이 깃든 건축물이다.

중국의 종묘가 9칸인데 비해 19칸의 긴 정면과 수평성이 강조된 건물 모습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독특한 건축물이며,

동양 고대문화의 성격과 특징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귀중한 자료가 담긴 유산이다.

종묘의 정전과 영녕전 및 주변 환경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종묘제례와 음악·춤의 원형이 잘 계승되어,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제례모습을 담은 사진(출처 : 종묘 안내서)

 

 

   종묘제례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셔 놓은 사당(종묘)에서 지내는 제사를 가리키며,‘대제(大祭)’라고도 부른다.

 

   종묘제례는 정시제와 임시제로 나뉘어, 정시제는 4계절의 첫 번째 달인 1월, 4월, 7월, 10월에 지냈고

임시제는 나라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을 때 지냈다.

제사를 지내는 예법이나 예절에 있어서 모범의식인 만큼 순서와 절차는 엄격하고 장엄하게 진행된다.

 

   제례는 크게 신을 모셔와 즐겁게 하고 보내드리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묘제례가 있기 전 왕은 4일간 근신하고 3일간 몸을 깨끗하게 한다.

종묘제례는 예(禮)를 소중히 여긴 조상들의 유교 사회에 있어 예술의 기준이 된 귀중한 의식으로 웅장함과 엄숙함이 돋보인다.

 

   해방이후 한때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1969년부터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행사를 주관하여 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봉행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과 더불어 2001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선정되었다.

 종묘입구의 사진설명안내그림

 

 

 

 

   울창한 숲이 있는 종묘를 뒤로하고 율곡로 위에 설치된 다리를 건너 북쪽의 창경궁으로 들어간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종묘제례 때 한번 방문하여 그 진행과정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명색이 전주이씨 후손으로서 이제야 종묘를 답사했으니 그 부끄러움을 어찌할꼬!  (2007. 7. 22). 

 

 

                 

 

 

 


출처 : 펜펜의 나홀로 산행
글쓴이 : pennpen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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