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코스 : 세검정 - 백사실 계곡 - 창의문 - 인왕산.
<부암동의 유래>
창의문을 나서면 부암동(付岩洞)이 된다. 1970년까지만 해도 창의문에서 세검정으로 가는 길 가 동쪽 부암동 134번지에 높이 2m 쯤 되는 부침바위(付岩)가 있었다. 부암동 동명은 이 부침바위가 있으므로 해서 유래되었다. 부침바위의 표면은 마치 벌집 모양 송송 뚫어진 것처럼 오목오목하게 패인 자국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 바위에 다른 돌을 자기 나이 수대로 문지르다가 손을 떼는 순간 바위에 돌이 착 붙으면 아들을 낳게 된다는 전설이 전해져서 여인들이 돌을 붙이려 애쓴 흔적이 벌집처럼 보이게 되었고 바위의 이름도 유래되었다.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바위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여인들이 바위에 돌을 붙여놓고 정성스럽게 절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부침바위에 대한 유래는 고려 중엽 몽고의 침입을 받았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많은 장정들이 원나라에 끌려갔는데, 그 중에는 신혼초야를 지낸 신랑도 섞여 있었다 한다. 혼인 하룻만에 생이별을 한 신부는 매일 소복을 하고 부침바위에 가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빌었다.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된 왕이 원나라 조정에 그 뜻을 전하여 마침내 신랑이 돌아와 부부가 상봉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소복을 하고 매일 같이 기도를 하며 빌 때는 바위에 붙인 돌이 떨어졌는데, 부부가 상봉한 후에는 붙인 돌이 그대로 있다 하여 부침바위라 하게 된 것이다. 이후 부터 아들 낳기를 바라거나 잃어버린 자식을 찾으려는 부모들이 이 바위에 돌을 붙이고 빌었다 한다.
이 부침바위에 대한 유래는 고려 중엽 몽고의 침입을 받았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많은 장정들이 원나라에 끌려갔는데, 그 중에는 신혼초야를 지낸 신랑도 섞여 있었다 한다. 혼인 하룻만에 생이별을 한 신부는 매일 소복을 하고 부침바위에 가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빌었다.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된 왕이 원나라 조정에 그 뜻을 전하여 마침내 신랑이 돌아와 부부가 상봉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소복을 하고 매일 같이 기도를 하며 빌 때는 바위에 붙인 돌이 떨어졌는데, 부부가 상봉한 후에는 붙인 돌이 그대로 있다 하여 부침바위라 하게 된 것이다. 이후 부터 아들 낳기를 바라거나 잃어버린 자식을 찾으려는 부모들이 이 바위에 돌을 붙이고 빌었다 한다.
*아래사진중 위에서 네번째 바위표지가 부암같다 아마도 도로확장때 이곳으로 옴긴 모양..
인조반정의 역사가 서린 세검정... 원정자는 1941년소실. 1977년 복원
너무 한적해서 시골산속 깊이 들어선 느낌이다.
사자능선과 보현봉
북악산길 성곽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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