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렌의 애가(哀歌) -제1신(第一信)
시몬!
이렇게 밤이 깊었는데 나는 홀로 작은 책상을 마주 앉아 밤을 새웁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 작고 큰 별들이 떨어졌다 모였다 그 찬란한
빛들이 무궁한 저편 세상에 요란히 어른거립니다.
세상은 어둡습니다.우리가 살고 있는 땅 위는 무한한 암흑 속에 꼭 파묻혔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허공 중에서 마치 나는 당신의 이야기
소리를 들으려는 듯이 조용히 꿇어앉았습니다.
광명한 밤하늘 저편으로부터 어둠을 멸하려는 순교자의 자취와 같이
당신은 지금 내 적막한 주위를 응시하고 서신 듯도 합니다.
이 침묵의 압박을 무엇으로 깨치리까?밤 바람이 주고 가는 멜로디가 잠깐 램프의 그늘을 흔들리게 합니다.
아직 나는 뜰 앞의 장미를 볼 수 없습니다.
당신이 심어 주신 그 장미를!여름 신의 애무가 있기 전에 장미는 나에게 향기를 전할 수 없을 줄 압니다.
이런 밤 장미가 용이하게 내 곁에 가까이있다면
나는 그 숭고한 향기로 당신을 명상하기에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책을 몇 페이지 읽으려면 자연 마음이 흩어지려 합니다.
그것은 책 속에 배열해 놓은 이론보다 당신의 산 설교가 더 마음에 동경
되는 까닭입니다.
시몬!
그러나 저는 책보다 당신을 더 동경하여서는 안 될 것을 알아요.
저 하늘에 윤회하는 성좌의 비밀을 알기 전에 당신이란 환상의 비밀을
알려고 고민함이 의롭지 못함인 줄 잘 압니다.
시몬!
당신의 애무를 원하기보다 당신의 냉담을 동경해야 할 저입니다.
용서하세요.그러나 저는 당신의 빛난 혼의 광채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알려 준 인생의 길,진리, 평화에 대한 높은 대화들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때로 내 생명을 장성시켜 주는 거룩한 사도이기도 합니다.
신에게 향한 이 신앙의 비애를마음 속으로부터 물리치려고 때로 노력합니다.
당신은 저에게 고독의 벗이 되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감정을 초월한 곳에 우리 인생이 들여다볼 수 있는 영원한 나라가
있다고. 인생을 젊음으로 사귀지 말라시던!
시몬!
죽음 위에 이 생명을 빛나게 조각할 수 있도록 순결한 몸과 마음으로
인생의 관문을 지나치고 싶습니다.
종교.예술.철학이 설명하는 진리의 일부분이나마 이 뇌수로 해득하여
그것으로 평생의 양식을 삼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저의 가장 큰 욕망이요
소원이 최후입니다.
이 소원을 이루는 데에 당신은 큰 도움을 주시기 때문 입니다.
당신의 말씀과 같이 저는 제 자신을 바르게 하는 데 힘쓰고 제 의무에
노력하다가 세상을 마칠 수 있도록 힘써 보오리다.
램프는 피곤한 듯 좁니다. 벌써 새로 두 시.
시몬!
들으세요. 성당에서 부활제의 종이 웁니다.불안한 육체속에 폐쇄되었던
영혼이 천성문의 암시를 기다리듯 창문 옆에 가까이 기대었습니다.
저는 오늘밤 침상으로 가기보다 저 거룩한 음향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내 운명의 암시와 함께 탁자에서 밤을 보내렵니다.
시몬!
당신이 좀더 내게 가까이 계셨다면! 그리고 숭엄한 저 종소리를 함께
들으셨다면!
그러나 시몬!
당신은 너무 제게서 멀리멀리 계십니다.내 창문은 너무 당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 새워져 있어요.
두 번째 종이 웁니다.빈 벌판에 유랑의 나그네가 되어 가던 카츄샤의 애처로운 심정도
이 새벽종이 다시금 알려주는 애련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몬!
당신이 걸어 주시고 가신 수정 십자가를 만져 봅니다.
검은 구름이 가까운 하늘에 돌고 있습니다.
이제 창문을 닫습니다.
오늘밤 당신을 연상함으로 어두운 밤 시간을 행복으로 지냈습니다.
날이 오래지 않아 밝아올 테니 아름다운 수면으로
이 밤을 작별하소서.
-렌의 애가(哀歌)와 모윤숙(毛允淑) -소쩍새는 피울음을 운다고 한다.짝을 부르는 새 소리를 사람들은
운다고도 하고 지저귄다고도 하고 노래한다고도 한다.
그 새가 되어 이룰 수 없는 사랑을밤낮으로 슬프게 노래한
영운(嶺雲) 모윤숙 시인이 있다.
영운은 1910년 함남 원산에서 태어나이화여전 문과를 졸업한 신여성으로 북간도의 명신여고에서 교편을 잡다가31년 서울 배화여고로 옮기면서월간 '삼천리'기자, 중앙방송국 기자로 일한다.
이해 12월 '동광'에 시 '피로 새긴 당신의 얼굴'을 발표하면서
그는 시단의 꽃으로 얼굴을 내밀었고,33년 첫 시집 '빛나는 지역'을 내면서 눈부신 빛깔로 타오르기 시작한다.
문학으로나 사회적 영향력으로나 당대 가장 웃어른이었던
춘원(春園) 이광수는 '빛나는 지역'의 서문에서"여사는 조선의 땅을 안으려 하는 시인이다.검은 머리를 풀어 허리를 매고 조선의
제단에 횃불을 켜놓으려 한다고 외치는 시인이다"고 치켜세우면서
"조선의 시인인 것을 감사하려 한다"고 영운을 크게 반기고 있다.
그 영운이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한 남자를 만난다.
이미 아내가 있는 그 남자에 대한 사랑을 날마다 일기장에 쓰면서
건널 수 없는 강을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움, 슬픔, 외로움,
아픔의 말로 띄운다.
아프리카의 깊은 숲속에서 혼자 우는 '렌'이라는 새를영운은 자기이름으로 한다.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의 옛 이름 '시몬'을
사랑하는 남자의 이름으로 한다.
빨리 뜨거워졌다가 쉽게 식어버리고 후회도 반성도 할 줄 아는
남자가 시몬이고 그것이 한국 남자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39년 어느날 조지훈이 영운을 찾아와서일기와 서간문을 보여 달라고 조른다.영운은 남에게 보이려고 쓴 글이 아니라며 거절 했으나조지훈은 끝내 그 원고들을 뺏어다가 자신이 관계하는
안국동의 일월서점에서 39쪽짜리 '렌의 애가(哀歌)'를 출판한다.
'렌의 애가'는 닷새 만에 매진됐고 나머지 일기도 읽게 해달라는
독자들의 성화가 빗발쳤다.유진오는 '렌의 애가'가 '한국판 좁은 문'
이며 여자 쪽에서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고 찬사를 던졌다.
그러면 영운이 그토록 영혼을 태우고 몸을 태우며 부르는 시몬은
누구인가.
그는 "연령이 높은 스승격인 분에게서 신비로운 감흥을 받았다"고 한다.36년 시몬과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일기장에 기록한
것이라고 했다.시몬이 혜명이란 남성을 소개해 주어 결혼하게 되는데,렌은 시몬에게서 느끼는 감정을 혜명에게서는 느끼지
못하고 결혼을 파탄으로 이끈다.
바로 이 내용이 세간의 궁금증을 더하는 것이었다.
영운에게 남자를 소개한 것은 춘원이었고 영운 자신도 파경을
했기 때문이다.
영운은 "구구한 억측도 많지만 난 그대로 침묵할 뿐"이라면서
"시몬과 렌의 정신적 결합은 결코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니 세상이
아는 그대로 자백해도 좋다"고 뒷날 밝히고 있다.
'렌의 애가'는 춘원의 '사랑'과 더불어 서구의 어떤 고전 못지않게
지난 시대 이 땅의 젊은이들 머리의 등잔불 심지를 높이던 필독서 였다.90년 팔순의 나이로 슬픈 노래를 못다 부르고 간 영운,
지금은 어느 숲에서 피울음을 울고 있는지?
아호(雅號): 영운(嶺雲)
대한민국 초대 문교장관 안호상(安浩相)의 부인. 이혼함.
개화기 여류시인. 수필가.
출처(出處): 인타넷 Googl에서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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