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름돌
어릴 적 할머니께서 냇가에 나가 누름돌을
한 개씩 주워 오시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누름돌은 반들반들 잘 깎인 돌로 김치가 수북한 독 위에
올려놓으면 그 무게로 숨을 죽여 김치 맛이 나게 해주는 돌입니다.
처음엔 그 용도를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할머니를 위해
종종 비슷한 모양의 돌들을 주워다 드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옛 어른들은 누름돌 하나씩은 품고 사셨던 것 같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을텐데 자신을 누르고,
희생과 사랑으로 그 아픈 시절을 견디어 냈으리라 생각됩니다.
요즘 내게 그런 누름돌이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스쳐가는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 받고, 주제넘게 욕심내다
깨어진 감정들을 지그시 눌러주는 그런 돌 하나 품고 싶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 만큼 들었는데도 팔딱거리는 성미며
여기저기 나서는 당돌함은 쉽게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그런 못된 성질을 꾹 눌러 놓을 수 있도록
누름돌 하나 잘 닦아 가슴에 품어야겠습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누름돌이 되어주면 좋겠고,
부모 자식 간이나 친구지간에도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도 훨씬 밝아지고 마음 편하게 되지 않을까요?
정성껏 김장독 어루만지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유난히 그리운 시절입니다.
최원현 / 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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