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생태

원시림속으로 가을 여정.. 울릉도 성인봉 트레킹

shepherd2 2015. 10. 3. 22:58

 

원시림속으로 가을 여정.. 울릉도 성인봉 트레킹

국민일보 | 입력 2015.10.01 02:57

 

울릉도 성인봉을 찾은 탐방객이 나리분지로 이어지는 정상 부근의 원시림 속을 걸어가고 있다. 울창한 나무와 뒤엉켜 있는 각종 식물을 보는 것만으로 몸과 마음이 초록빛으로 물들 것 같다. 이 숲은 천연기념물 제189호로 지정돼 있다.

울릉도 성인봉을 찾은 탐방객이 나리분지로 이어지는 정상 부근의 원시림 속을 걸어가고 있다. 울창한 나무와 뒤엉켜 있는 각종 식물을 보는 것만으로 몸과 마음이 초록빛으로 물들 것 같다. 이 숲은 천연기념물 제189호로 지정돼 있다.
알봉분지 투막집.
알봉분지 투막집.

성인봉(聖人峰·986.4m)은 연중 대부분이 안개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모습을 자아낸다. 해발 600m 부근 태곳적 원시림에는 섬피나무와 너도밤나무, 섬고로쇠나무 등 희귀한 나무들이 군락을 이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울릉도의 속살을 보기 위해 ‘성인’을 찾아 나섰다.

해발 1000m도 되지 않는 산이라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해저에서의 높이를 합하면 약 3000m에 달해 제주도나 백두산보다 큰 화산체다. 산기슭이 가파른데다 길이 곧추서 있어 급한 숨을 내쉬어야 하는 곳이 적지 않다.

성인봉 등산로는 대체로 도동항 및 나리분지와 연결돼 있다. 도동항에서 산행을 시작해 나리분지로 내려온 뒤 버스로 되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대코스도 애용된다. 도동항 쪽에서의 출발지는 대원사와 KBS중계소, 안평전(사동) 등 세 곳. 비교적 완만한 KBS중계소 코스가 선호된다. 중계소 바로 위 주차장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어서 발품을 줄일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이곳의 해발고도가 266m쯤 되니 720m만 고도를 높이면 된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3㎞ 남짓. 2시간가량 걸린다.

‘성인봉 가는 길’ 팻말을 따라 조금 올라서면 울릉도 생활의 중심지 도동항이 눈 아래로 활짝 펼쳐진다. 멀리 일렁이는 에메랄드빛 바다는 쏟아지는 햇빛을 반짝이는 은빛으로 되돌려준다. 금세 그늘로 들어선다. 가을 햇볕이 제법 매섭지만 이곳에는 침범하진 못한다. 새소리는 맑고 시원한 기운은 가슴까지 스며든다.

처음부터 시작되는 된비알. 가풀막을 지그재그로 오른다. 30여분 올라 능선에 이르면 길은 유순해진다. 이곳부터는 비교적 평탄한 능선과 오르막이 반복된다. 머리 위로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보이고 햇살도 나무 사이를 뚫고 지난다. 산허리를 감아 도는 길에서는 뭍에서의 산행과는 확연히 다른 이국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울릉도 자생식물과 산나물을 구경하며 산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등산로 양쪽에 늘어선 회솔나무, 섬황벽나무, 마가목 등 나무둥치가 온통 희다.

이내 성인봉 꼭대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구름에 휩싸인 정상에서는 한치 앞도 안 보인다. ‘성인봉’이라 쓰인 정상석만 우두커니 서 있어 예상 외로 밋밋하고 시야마저 답답하다.

이제 나리분지로 하산할 차례다. 나리분지 주차장까지 거리는 약 4㎞. 1시간45분쯤 걸린다. 정상에서 왔던 길로 10여m 내려와 오른쪽 침목계단으로 향한다. 나리분지에서 출발한 이들에겐 ‘공포의 계단’이다. 밑동의 둘레가 몇 아름씩 되는 고목이 자주 눈에 띈다. 온 몸과 마음에 초록이 스며든다. 가파른 계단 길을 300m쯤 내려서면 성인정이라는 샘물이 있고 조금 더 내려가면 수령이 500년 됐다는 특이한 모양의 섬피나무가 경외감을 자아내게 한다. 아래쪽 몸통은 텅 비어 있지만 위쪽의 줄기와 가지는 여전히 푸른 잎들을 주렁주렁 달고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국가지질공원으로 등재된 성인봉 원시림에는 너도밤나무, 섬단풍, 우산고로쇠, 섬피나무 등 울릉도에서만 나는 나무와 고비·고사리 같은 양치식물, 산나물이 빽빽하다. 숲은 조용하고 태고의 신비감을 안겨준다.

알봉전망대에 서자 아래는 온통 융단같이 고운 초록빛 원시림이다. 왼편으로 미륵산(905.1m), 형제봉(716.8m), 송곳산(610.9m)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알봉(538m) 오른쪽으로는 나리분지가 평온하게 자리하고 있다.

계곡으로 내려서면 더 이상 급경사 내리막 계단은 없다. 계류를 따라 10여분 더 내려가면 ‘신령수’라는 샘터다. 가지런히 쌓아놓은 바위들 틈에서 맑은 샘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여기서 나리분지까지는 2㎞. 숲의 터널이 이어진다. 밤나무를 쏙 빼닮은 너도밤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키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주고, 시원한 바람도 지나 한가하게 거닐기에도 좋다. 천천히 주변 식물과 나무들을 관찰하며 나리분지까지 30여분 내려간다.

길옆으로 10∼20m 간격으로 울릉도에만 있는 나무와 식물을 소개하는 입간판이 서 있다. 섬바디, 회솔나무, 섬황벽나무, 말오줌나무, 섬백리향…. 식물 이름들이 독특하다. 부지깽이(섬 쑥부쟁이)를 비롯해 명이, 노랑털 머위꽃, 미역취도 지천으로 자생한다. 하나하나 이름을 알아가며 걷다 보면 금방 나리분지다.

‘나리동’은 개척자들이 섬말나리의 뿌리를 캐 먹으며 목숨을 이었다는 눈물겨운 이름이다. 나리동에는 독특한 형태의 투막집과 너와집이 있다. 투막집은 통나무와 나무껍질로 지은 방이 3칸 있는 집이다. 옥수숫대나 억새로 지붕을 덮고 둘레도 촘촘하게 막았다. 너와집은 통나무로 집을 짓고 지붕에 돌을 잔뜩 올린 집이다.

성인봉 원시림 산행길은 크나큰 치유와 힘을 실어준다. 살면서 힘들 때 조용히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이다.

울릉도=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음악 임의 삽입/choidk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