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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건강 갉아먹는 난청.. 뇌 쪼그라들어 치매 위험 최대 5배 ↑

shepherd2 2021. 6. 1. 04:30

정신 건강 갉아먹는 난청.. 뇌 쪼그라들어 치매 위험 최대 5배 ↑

민태원,최예슬,송경모 입력 2021. 06. 01. 04:03 

 

[잘 들리나요? 난청, 늦기 전에 준비하자] ③ 방치하면 더 큰 화 부른다
난청 심하면 인자장애·치매 ↑.. 보청기 끼면 치매 예방 효과


박모(69) 할머니는 얼마 전 차와 부딪힐 뻔했다. 손녀가 길에서 넘어지는 걸 보고 일으키기 위해 쫓아가다가 차가 다가오며 낸 경적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 할머니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소리 크기는 71데시벨(dB)이상의 고도 난청에 해당됐지만 보청기는 하지 않았다. 비슷한 정도의 난청을 겪는 서모(78) 할머니도 주변 소리나 장애물을 인지하지 못해 다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면 눈앞의 위험상황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몸의 평형 기능이 나빠져 낙상하거나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가 40~69세 2017명을 대상으로 난청과 낙상의 연관성을 연구한 결과 25dB 정도의 가벼운 난청이라도 낙상사고 발생률은 정상인(0~20dB)보다 3배 높고 난청 정도가 10dB 나빠질 때마다 낙상 위험은 1.4배씩 증가했다.


난청으로 빚어지는 더 큰 문제는 2차적 건강 위협이다. 귀가 어두워져 의사소통이 힘들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사람 만나는 횟수가 줄어든다. 혼자 고립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사회활동이 위축되고 결국 우울증에 빠지거나 심하면 극단적 선택 충동으로 이어지는 등 정신건강까지 피폐해진다.

 

최정환 인제의대 상계백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31일 “늘 듣던 음악이 덜 들리고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도 놓치게 되며 직장에서 상사의 지시를 못 들을까봐 노심초사해 24시간 온 정신을 집중하고 회의에서 정확하게 질문을 인지하지 못해 동문서답을 하게 되며 택시 운전사는 손님 목적지를 한 번에 알지 못하고 자꾸 되묻는 일이 빈번해짐에 따라 듣는 것이 마치 외국어를 듣는 것처럼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힘든 일이 되어버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수가 반복되고 낮은 업무평가를 자꾸 받으면 슬픔, 불안에 더해 대화를 아예 피하거나 대화에서 자신이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모임을 회피하게 되고 혼자 지내기를 선호하게 된다. 결국 자포자기하고 고립된 생활에 빠지게 돼 심하면 우울증에 이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분당차병원이 청각장애 진단을 받은 중증 난청인 6136명을 추적 조사했더니 정상인보다 우울증 발병 위험이 1.37배 높았다. 이는 남성일수록 더욱 짙었는데, 60세 이상 난청 남성의 우울증 위험은 1.51배로 여성(1.25배)보다 높았다. 30세 이하에서도 남성은 2.8배, 여성은 1.93배의 위험도를 보였다. 또 고소득층의 위험도는 1.64배, 저소득층은 1.25배로 나타나 난청과 우울증의 관계는 경제 수준과 무관한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의 높은 노인 자살률과 난청을 연관 짓는 진단도 있다. 이종대 순천향의대 부천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난청과 자살률의 연관성을 밝힌 연구보고가 아직 없지만 자살이 우울증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고려할 때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난청이 심할수록 치매와 인지장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도 차츰 입증되고 있다. 2011년 미 존스홉킨스의대 연구에 의하면 치매 발생률은 경도 난청(26~40dB) 시 1.89배, 중도 난청(41~70dB) 시 3배, 고도 난청(71dB 이상)땐 4.94배 증가하는 걸로 나타났다. 고려대 안산병원 이비인후과 최준 교수팀은 지난 4월 열린 대한이과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2010~2017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로 난청과 치매의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난청이 심할수록 모든 형태의 치매 발생 위험도가 1.3배 증가했고 65세 이하의 심한 청각장애군에선 1.9배 높게 나왔다.

심한 난청 환자의 뇌 MRI 영상. 노란색으로 표시된 곳이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의 위축 부위다. 노란색이 짙을수록 부피 감소가 많음을 보여준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분당서울대병원 송재진 교수팀은 건강검진자 405명을 대상으로 난청이 심한 그룹(41dB 이상 중도 난청)과 정상 그룹(0~25dB)의 뇌 MRI를 찍어 비교한 결과, 청력 소실 그룹의 기억을 관장하는 뇌 해마 부위 부피가 감소한 사실을 확인했다. 청력이 나쁠수록 언어 처리 영역인 하측두엽이 위축돼 있는 것도 발견했다. 송 교수는 “기억과 언어처리 등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쪼그라들고 퇴화하는 현상과 난청이 상관관계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실제 조모(69) 할아버지는 10년 전부터 난청이 있었으나 불편할 것 같아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았다. 대화가 되지 않아 혼자 지내거나 도움이 필요할 땐 아내의 통역을 받았다. 기억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해 최근 신경과를 찾은 결과 ‘기억상실형 경도인지장애(치매 전 단계)’ 진단을 받았다. 치매로 진행을 막으려면 적극적인 신체활동과 사회활동을 할 것을 추천받은 후 보청기 착용을 결정했다.

 

보청기 착용이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연구도 있다. 최근 영국 얼스터대의 50세 이상 난청인 2114명 대상 연구를 보면 보청기를 사용한 난청인은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후 5년 안에 치매 발생 위험이 19%로, 보청기 미사용 난청인(33%)보다 훨씬 낮았다. 또 보청기 착용 난청인은 경도인지장애에서 치매로 이행 기간이 평균 2년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종대 교수는 “2017년 의학학술지 ‘랜싯’에 실린 연구에 의하면 ‘노년의 적’ 치매는 35%만이 예방할 수 있는데 예방 가능한 위험인자 중 가장 높은 것이 난청(9%)이었고 고혈압(2%) 당뇨(1%)보다 높았다. 치매 예방 1순위가 바로 난청 치료임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경원 한림국제대학원대 청각언어치료학 교수는 “난청과 관련된 치매 발생으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회·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보청기 착용 등 난청인들에게 적절한 청각재활 방법을 찾아주고 국가 차원의 지원사업이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장년도 난청이 있다면 인지장애나 치매가 이른 나이에 올 수 있어 적극적인 청각재활을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소아청소년 시기 난청은 성장발달에 영향을 준다. 분당서울대병원 최병윤 교수는 “유소아기 난청이 발생하면 언어 습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정상 발육에 큰 지장이 초래된다. 청소년기 난청도 대뇌 발달이나 인지 기능, 우울증 등 정신건강, 학업성적 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많은 만큼 적극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