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뇌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은 ‘이해’… 상대 감정 공감하기 훈련해야”

shepherd2 2021. 11. 30. 10:56

“뇌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은 ‘이해’… 상대 감정 공감하기 훈련해야”

신문13면 TOP 기사입력 2021.11.30. 오전 10:21 
 
 

 

사진 = 김선규 기자

■ 한국인의 마음 - ⑧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윤홍균이 말하는 ‘사랑’

韓 급성장하는동안 ‘사랑’ 위기

“너도나도 불행” 4050 가장심각

강속구 계속 던지면 어깨 상하듯

중년에도 불타오르면 심장 큰일

너그러운 ‘사랑 기술’ 개발해야

기본 친밀력에다 거절력도 중요

대화력·사과력·지속력 길러야

사랑은 체력전… 심장·근력 준비

할머니시대 사랑은 “밥 먹었냐”

요즘세상은 내 마음 알아주는것

이별할때도 “고마웠다” 덕담을


사랑. 1억5000만 년 전 원시적 형태로 지구 생명 역사에 등장해 인류 진화의 필수생존전략이 된 사랑. 진화인류학자 브라이언 헤어 등에 따르면 인류 진화에서 가장 ‘공격적인 자’가 ‘적자생존’한 것이 아니라 공감하고, 협력하고, 반응하는 ‘다정한 자’가 살아남았다. 수백만 년을 관통해온 이 사랑이 위태롭다. 사랑을 믿지 않고, 연애와 결혼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는다. 재밌는 것이 넘쳐나고, 기쁨과 행복의 갈망이지만 동시에 모든 문제의 근원인 복잡한 사랑이 불편하다. 포르노는 사랑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집값은 사랑을 냉소하게 만들었고, 넘치는 판타지는 사랑을 저 세계로 날려버렸다. 그래서 18일 베스트셀러 ‘자존감수업’ ‘사랑수업’으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사랑을 탐구하고 설명해온 윤홍균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를 만났다. 사랑이 위기지만 그 어느 때보다 외롭고 우울하고 불안한, 그래서 오히려 사랑이 더 절실해진 시대, 그에게 한국인의 사랑에 대해 들었다.

※ 우울, 분노, 나르시시즘, 콤플렉스, 집착, 열정·번아웃, 행복 등 7회로 마무리된 ‘한국인의 마음’ 시리즈는 다시 계속됩니다.

―젊은이는 결혼하지 않고 중·노년은 황혼이혼을 한다. 사랑이 위기인가요.

“사랑의 위기는 어느 나라나 겪고 있지만 우리는 좀 특별하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은 세계 공통적으로 일과 사랑인데, 한국이 급성장했다는 건 그만큼 일을 열심히 했다는 거다. 우리는 오랫동안 사랑에 집중을 못 하고 있다. 사랑을 시작하는 나이가 늦어진 것도 이유다. 저 때만 해도 스물이면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었다. 지금은 대학생도 바쁘고, 성인이 돼 사회에 나오는 시기도 늦어졌다.”

일러스트 = 이정호 작가

―드라마에선 로맨스 판타지가 쏟아지고 있다. 사랑의 신화가 사랑을 더 위협하나요.

“사랑 신화는 예부터 있었다. 사랑해야 인구도 늘고 사회도 발전하고 문제도 해결되니 사랑은 늘 강조됐다. 문제는 옛날에는 신화와 실제 사랑을 구분할 수 있었다. 대가족 안에서 형제자매, 고모·삼촌의 사랑을 보고 배우며 자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부모의 사랑, 친구 몇몇의 사랑 외에 사랑 데이터가 없다. 드라마 속 사랑, 게시판 정보, 심하면 야한 동영상만, 혐오의 글만 보다가 왜곡된 시선으로 사랑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지금 가장 위기에 처한 사랑은.

“젊은이의 사랑 문제가 폭발 직전이라면 중·노년의 사랑은 이미 폭발해 표면 위로 드러났다. 황혼이혼이 늘었다. 20·30대의 사랑은 드라마에서라도 롤모델을 보는데 중년 이후의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형에게, 선배에게 물어보니 ‘너도 불행해? 나도 불행해, 우리 모두 불행’. 이렇게 고착화된다. 부부간에 어떻게 대화할지 몰라서 반 포기로 지내다 터지기도 한다.”

―노년의 사랑도 달라졌지요.

“수명이 길어지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좋은 사랑에 대한 개념도 변한다. 20대에 만나 가정을 이루고 백년해로하는 것만이 건강한 사랑은 아니다. 다만 어떤 사랑이든 존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만은 같다.” 그는 사랑도 인생단계에 따라 달라진다며 야구선수에 비유했다. “전성기에 150㎞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들이 있다. 이 선수가 20대 후반, 30대가 돼도 그렇게 던지면 어깨가 상한다. 그땐 전략을 수정한다. 제구력 위주로, 변화구도 연습하고. 그러다 은퇴 즈음 어떻게 내 노하우를 전할까 해서 코치로, 감독으로 넘어간다. 야구를 잘하기 위해 한 가지 방식만 고집하지 않듯 사랑도 마찬가지다. 20·30대에는 사랑의 열정을 불사르지만 40·50대에도 그러면 심장에 큰일이 난다. 그땐 여유 있고, 너그럽고 관대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삶의 주기가 있다. 시대에 따라 사랑의 개념도 바뀐다.”

―그럼 요즘 시대 사랑은 뭔가요.

“공감이다. 저희 할머니 시대의 사랑은 ‘밥’이었다. 저희 할머니는 암 수술 전날에도 내 밥걱정을 했다. 그때 할머니의 ‘밥 먹었냐’는 말이 ‘사랑한다’는 뜻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다음 부모님 세대, 베이비붐 세대는 뭐든 많다. 일자리도 많고 일하겠다는 사람도 많고. 학교 한 반이 70, 80명이라 1년 동안 이름 한번 안 부른 친구가 허다했다. 그래서 이들에겐 관심의 표현이 사랑이었다. ‘결혼했니?’ ‘취직은 언제?’ 부담스러운 호구조사가 사랑이다. 그런데 지금 젊은이의 고민은 ‘감정’이다. ‘너무 화난다, 외롭다, 슬프다, 내가 불쌍해 눈물이 나온다’이다. 이 감정을 달래는 건 ‘공감’이다. ‘슬프겠다, 화나겠다’ 이렇게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게 요즘 사랑이다.”

이해하는 동안 우리 뇌는 감정 중추인 변연계를 진정시키고 이성 중추인 전두엽을 활동시킨다. 격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서로 받아들이게 되는, 그래서 이해는 뇌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한국사회의 공감력은.

“떨어진다. 배우지 않았으니. 어려서 영어 학원에 가고 수학 문제를 풀지만 관계에 대해 배우지 않는다. 군사독재도 있었다. ‘하면 된다’ ‘까라면 까라’. 오랫동안 감정을 억압하는 문화였다. 좀 이상적이긴 하지만 학교에서 심리학이나 소통 관련 수업을 하고, 시험도 쳤으면 한다. 외워서라도 혀 근육을 쓰고 훈련해야 하는데 준비가 안 되다 보니 감정이 충돌하면 해결을 못 한다.”

―오랫동안 사랑은 죽음처럼 배울 수 없다고 했는데, 최근 심리학자들은 배우고 연습하라고 한다. 그런가요.

‘한국인의 마음’은 문화일보 문화부 유튜브에서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증권 투자를 하려 해도 공부하는데, 이 어렵고 복잡한 사랑을 하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인간의 뇌 기억 회로는 두 가지다. 먼저 선언적·명시적 기억은 ‘미국 초대 대통령은 누구’처럼 단답형 답이 나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암묵적·비명시적 기억이다. 자전거 타는 기술처럼 말로 표현하긴 애매한데 반복 작업과 훈련으로 배우는 기억, 기술이다. 사랑은 암묵적 기억이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맞는 사람을 찾고, 나는 이런 줄 알았는데 저런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점점 깊어진다.”

―사랑이 기술이라면 어떤 기술인가.

“일단 친해져야 하니 ‘친밀력’이 기본이다. 그다음은 ‘거절력’. 이 사람을 사랑하려면 다른 사람은 거절해야 한다. 일 중독, 온갖 것에 신경 쓰는 것도 방해가 된다. 친해졌으면 ‘대화력’이 요구된다. 또 아무리 사랑해도 좋은 일만 있을 순 없으니 ‘사과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 네 능력을 계속 발전시키는 ‘지속력’까지. 이 다섯 가지가 사랑력이다.”

여기서 그는 ‘이별’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리 깊은 사랑도 죽음을 넘을 수 없듯 모든 사랑엔 이별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울고불고 식음을 전폐하고 술주정하는 이별이 아니라 좋았던 점, 고마웠던 점을 이야기하는 덕담하는 이별”을 권했다. “그래야 그다음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다”면서. 그는 요즘 사회문제가 되는 ‘데이트 폭력’에 대해 ‘데이트 폭력’이 아닌 ‘이별 후 폭력’ 혹은 그냥 ‘폭력’이라며 이별 후 혹시라도 위협을 느낀다면 안전 문제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절대 고립되지 말고, 공개적으로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좋은 사랑을 하려면 운동을 하라고 했는데요. 이유는.

“사랑은 체력전이다. 의외로 많은 커플이 체력 저하 때문에, 체력 차를 이해 못 해 어려움을 겪는다. 부모님이, 부인이 화를 내는 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몸이 아프고, 육아가 힘든 탓이다. 사랑하려면 심장, 근력부터 준비해야 한다. 힘들 때 나오는 반복 행동인 ‘방어기제’도 살펴야 한다. 방어기제가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성격이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트레스받으면 화를 내는지, 입을 꾹 다무는지 알고 가다듬어야 한다.” 생각보다 돈도 에너지도 들지 않는다는 게 그의 말이다. “사랑의 욕구는 누르지 말고 수면 위로 올려놓고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사랑이 연인, 부부의 사랑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반려동물을 아끼고 식물을 키우는 것도 사랑”이라는 그는 “살면서 투자할 가치 중 최고가 사랑”이라며 치열하게 사랑하라고 말했다. “못 할 거 같지만 조금 더 할 때 지구력이 생긴다. 사랑하는 힘은 사랑해야 늘어난다. 소중히 여기고, 이해하고 도와줘야 한다. 연인을, 친구를, 가족을, 나를, 나의 하루를. 완벽한 사랑은 없다.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수밖에. 할 수 있는 한 최대치로.”

모든 것을 거슬러 지금 사랑하는 이를 향해 헤엄쳐 나가라는 것이다. 1년 365일, 525600분의 가치를 묻는 뮤지컬 ‘렌트’의 노래 가사처럼. “525600분의 귀한 시간들 어떻게 재요. 날짜로? 계절로? 매일 밤 마신 커피로? 웃음과 고통의 시간들로… 그것은 사랑, 그것은 사랑, 사랑으로 느껴봐요. 사랑으로.”

■ 윤홍균의 리스트

이별후 울고 싶을땐… 박정현의 ‘사랑이 올까요’


윤홍균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이별 때문에 울고 싶을 때 가수 박정현의 ‘사랑이 올까요’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이별했을 때 제일 두려운 게, 과연 나한테 사랑이 다시 올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설레고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 거거든요. 상처받은 영혼이 돼 평생 괴롭고, 아플 것 같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괴로워하는데 그 마음에 상당히 공감을 주는 멜로디와 가사가 있어요. ‘사랑이 올까요’라는 제목의 노래가 여러 곡 있고 다 좋은데 박정현 씨 노래를 권하고 싶습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으론 관계전문가 김지윤의 ‘모녀의 세계’(은행나무)를 추천했다.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책이에요. 읽으면서 고마웠어요. 저는 1분, 1초도 엄마로 살아본 적도, 딸로 살아본 적도 없거든요. 그래서 딸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 엄마 때문에 힘들어하는 딸이 오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건지, 늘 의구심이 들어서 누가 이야기 좀 해줬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 책에 그 절절한 마음이 들어 있어요. 모녀의 세계, 결국은 사랑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