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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강릉 맞아? 계곡 걷다보니 폰 끊겼다, 폭염도 비껴간 오지

shepherd2 2022. 8. 4. 09:24

여기 강릉 맞아? 계곡 걷다보니 폰 끊겼다, 폭염도 비껴간 오지

최승표 입력 2022. 08. 04. 05:01 수정 2022. 08. 04. 09:13 
 
강원도 강릉 부연동계곡과 양양 법수치계곡을 걷는 '계곡바우길'은 여름 계곡 트레킹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난 7월 30일 강릉바우길 '주말 다 함께 걷기' 행사에 참가한 여행자들이 계곡을 걷는 모습.

8월 초 현재, 영동지방은 북새통이다. 해수욕장은 물 반, 사람 반이고 주요 도로는 교통체증도 심하다. 휴가철만 이럴까. 강릉·양양·속초 관광지는 사철 북적인다. 한데 강릉에도 아직 이런 곳이 있나 깊은 오지를 만나고 왔다. 여름에만 즐길 수 있는 계곡 트레킹 장소를 물색하던 중 7월 30일 ㈔강릉바우길이 주최하는 걷기 행사에 합류했다. 강릉과 양양의 깊은 계곡으로 틈입하는 ‘계곡바우길’ 걷기. 인적 뜸한 계곡은 무릉도원이었고, 계곡물은 더위를 날려 버릴 만큼 차가웠다.


여름 산행의 백미 - 계곡바우길


제주도에 제주올레가 있다면 강릉에는 강릉바우길이 있다. 산과 바다, 호수와 도심. 강릉의 매력을 두 발로 느끼는 17개 일반 코스는 제법 많이 알려졌다. 특별 코스도 있다. 100㎞에 이르는 고난도 코스인 '울트라바우길', 2018 평창 올림픽 때 생긴 '올림픽아리바우길'이 대표적이다. 한여름에 제격인 '계곡바우길'도 있다. 일반 코스와 뚝 떨어진 산간내륙, 양양 법수치리와 강릉 부연동에 걸친 코스다. 이기호 강릉바우길 사무국장은 "외국 유명 트레일도 이렇게 멋진 계곡을 걷는 코스는 없다"며 "계곡 바우길은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강원도다운 길"이라고 설명했다.
계곡 바우길은 숙련된 산꾼과 함께 걸어야 하는 고난도 걷기 코스다. 20.5km에 이르는 전체 구간은 이틀에 걸쳐 걸어야 한다. 사진 강릉바우길 홈페이지
계곡바우길은 20.5㎞다. 거리만 보면 하루만에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야영을 하며 꼬박 이틀을 걸어야 한다. 길이 험하고 대중교통 접근도 쉽지 않아서 숙련된 산꾼과 동행해야 한다. 1년에 딱 한 번 진행하는 계곡바우길 걷기 행사를 학수고대한 이유다. 7월 30일, 함께 걷기 행사는 하루짜리 단축 코스를 걸었다.
강릉바우길은 토요일마다 '주말 다 함께 걷기' 행사를 연다. 홀로 산을 걷기 부담스럽다면 참가해 볼 만하다. 7월 30일 계곡바우길 출발지점인 대승폭포 앞에서 포즈를 잡은 참가자들.
오전 8시, 강릉바우길 사무국 앞에 32명이 모였다. 버스 두 대를 나눠타고 출발. 7번 국도를 타고 주문진·죽도·하조대해변을 지나 오대산 방향 내륙으로 들어갔다.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법수치계곡 대승폭포. 기념사진 찍은 뒤 본격 산행에 나섰다. 완만한 임도를 30분 걸었다.
물속을 걷는 계곡 트레킹은 접지력이 좋은 여벌의 등산화나 아쿠아 슈즈, 등산 스틱을 꼭 챙겨야 한다.
드디어 계곡 구간. 바위투성이 비탈이어서 물속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아쿠아슈즈나 샌들로 갈아 신는 사람도 있었고 등산화를 신은 채 입수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강이까지 물이 차올랐다. 덥고 습한 날씨 탓에 꿉꿉했는데 단숨에 청량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졌다. 한데 바닥이 미끄러워 자세가 불안했다. 홀랑 넘어지는 사람도 많았다. 계곡바우길만 네 번째라는 김경연(56)씨가 요령을 알려줬다. "큰 돌에 이끼가 많으니 웬만하면 자갈을 밟으세요. 스틱을 안정적으로 먼저 디뎌놓고요." 한결 걷기가 편했다.

얼음물 계곡에 풍덩


계곡바우길은 2개 계곡을 걷는다. 양양 쪽은 법수치계곡, 강릉 쪽은 부연동계곡. 골짜기 이름은 다르지만 물은 한줄기에서 났다. 오대산에서 발원해 바다로 흘러드는 '양양 남대천'이다. 가을이면 연어가 돌아오는 그 물이다. 그러나 연어도 이렇게 깊은 산골까지 들어오진 않을 테다. 출발지점만 해도 듬성듬성 펜션이 보이고 전화 신호도 잡혔지만 걷다 보니 인적도 신호도 끊겼다.
부연동계곡.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도시 강릉에 이런 오지가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깊은 계곡이다.
정오가 지났다. 바위에 걸터앉아 점심을 먹었다. 얼린 우유를 챙겨와 즉석 팥빙수를 만들어 나눈 참가자도 있었다. 달곰한 빙수 맛에, 통 큰 호의에 더위가 싹 가셨다. 식사를 마치고 소(沼)에서 수영하고 물장구치며 노는 참가자도 있었다. 쉬었던 자리는 흔적도 남지 않도록 깨끗이 정리했다.
계곡 트레킹에 나설 때는 깊은 수위에 대비해야 한다. 자일을 붙잡고 계곡을 건너야 할 때도 있다.
다시 기운을 내 걷기 시작했다. 계곡을 좌우로 넘나들고 이따금 산길도 걸었다. 허리까지 잠기는 깊은 물도 나왔다. 강릉바우길 사무국에서 준비한 자일을 붙잡고 간신히 건넜다. 참가자들은 서로 손을 잡아주고 뒤처진 이와 함께 걸으며 보조를 맞췄다.

강릉 부연동계곡 쪽으로 넘어오자 삼삼오오 걷는 이들이 보였다. 야영 장비를 짊어진 백패커도 보였다. 이런 오지를 어떻게 알았는지, 무섭진 않은지 물었다. 김영기(40)씨는 "사람이 없으니 오히려 안 무섭죠"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계곡바우길을 걷다보면 이따금 산길도 나온다. 사람 한 명 간신히 걸을 정도의 좁은 길이 대부분이다.

어느새 도착지점이었다. GPS 앱을 보니 약 8㎞를 걸었다. 1만 보가 조금 넘었으니 많이 걸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무릎이 시큰시큰했다. 안 미끄러지려고 온몸에 힘을 준 터였다. 참가자 중에는 외국인도 있었다. 강릉원주대 리스 랜달(29, 남아공) 초빙교수는 "깊고 고요한 계곡에서 물속을 걸으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며 "베테랑 산꾼들의 도움 덕에 난코스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냥 버스를 타려니 뭔가 아쉬웠다. 한 번 더, 계곡물에 온몸이 젖도록 푹 잠겼다가 나왔다. 냉탕보다, 냉면보다 시원했다.

■ 여행정보

「 계곡바우길은 숙련된 산꾼과 함께 걷길 권한다. 등산 스틱, 여벌의 옷과 등산화를 꼭 챙기고 식수와 간식도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걷기 전에 강릉바우길 사무국으로 연락해 자세한 안내를 받는 게 좋다. 바우길 홈페이지에서 지도와 GPS를 내려받을 수도 있다. 강릉시 유천동에 자리한 여행정보센터 ‘강릉수월래’에 바우길 사무국이 있다.

■ 올여름 가볼 만한 계곡 트레킹 명소

무릉도원을 연상시키는 강원도 삼척 덕풍마을 용소골. 백종현 기자

산행 경험이 많지 않아 계곡바우길 도전이 쉽지 않다면 다른 계곡을 가면 된다. 여름에 가볼 만한 계곡 트레킹 코스가 의외로 많다.
먼저 강원도 삼척 덕풍계곡. 응봉산(999m) 기슭에 흐르는 13㎞ 길이의 계곡이다. 안전 때문에 용소골 마을 입구에서 제 2용소까지 2.5㎞만 개방한다. 코스는 짧지만 흥미진진하다. 밧줄 잡고 절벽을 기어오르고 징검다리도 건넌다. 얼음장처럼 찬물을 첨벙첨벙 걷는 재미가 남다르다. 1급수에만 사는 버들치가 훤히 보일 만큼 물이 맑다.
강원도 인제 아침가리도 대표적인 계곡 트레킹 코스다. 방동약수를 들머리 삼아 6㎞쯤 임도를 걷다 보면 조경교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진동1리 농촌체험학교까지 계속 계곡을 끼고 걷는다. 수시로 물을 넘나들어야 해서 여분의 신발과 옷을 준비해야 한다. 전체 길이가 약 12㎞다.
경북 포항 내연산은 남부지방을 대표하는 계곡 산행 명소다. 보경사를 출발해 계곡을 따라 약 13㎞를 걸으면 그림 같은 폭포 12개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절경을 만난다. 산 정상 삼지봉(711m)을 올라도 되고, 계곡을 따라 쭉 걷다가 경상북도수목원까지 가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