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그 날
머리깎게 돈 달라고 한 날
막 이쁜데 왜 깎느냐고 한 날
선생님한테 머리길다고
대뿌리로 손등 10대 맞었네요
돈 없어서 그러셨죠.
어머니
여름 날
수제비 끓여주면서
밥보다 수제비가 더 맛 있다고 하신 날
그 날 양식이 떨어졌었죠.
어머니
졸업 앨범값 달라고 한 날
친구한테 빌려보면 된다고 하신 날
그 날 이후로
못 빌려 봤네요
25년뒤 모교에 특강갔다가
교장생님이 보여줘서 처음 봤는데
설움을 참으려 허벅지를 꼬집었네요
어머니
제주도 수학여행비 마감 날
배멀미한다고 커서 가라고 하신 말
그 말 믿고
제주도 신혼여행
비행기 타고 갔네요
어머니
딸 반 한 아이가
제주도 못 간다 하여
용돈이랑 챙겨서 보내 주었네요
어머니 그냥 가만히 미소만 지어 주세요
어머니
못자리 두레로 물 퍼올리고 학교 가던 날
100번만 하자고 해놓고
300번 퍼 올린 날
그 날 지각할까봐 무지 뛰었습니다.
어머니
남의 집 닭 한 마리
우리집 마당 허적거릴때
모가지를 비틀어 국 끓여 주셨죠
그 날
배고픈 가난의 모가지를
확 비틀어 버리셨죠
어머니
서근세 물 뚝 뚝 떨어지는 부엌에서
부짓깽이로 아궁이를 두드리며
한 소리 하시던 날
먼저 가신 아버님을 두들겼죠.
어머니
그 날 기억나세요
옆집에서 고구마 3개를 양재기에 담아
담 넘겨 주시던 날
속없는 아들 둘이서 서로 먹을려고 싸우다
양재기 날아 막둥이 오른쪽 이마에
찍혀 피 보이던 날
그때 어머님 말씀대로
가르마는 꼭 왼쪽가르마를 하고 다닙니다.
어머니
논 물코 보러 가시던 날
논길에서 졸다가 또랑에 빠지신 날
그 때는 웃었는데
희망없이 하루 하루 힘드셨죠.
어머니
아버지 가신 날
막둥이는 빵긋 빵긋 속없이 웃고
5살 형은 상여 꽃 안 준다고 울고
8살 형은 고구마 안 준다고 울고
당신은 무슨 생각에 우셨데요.
어머니
흉년 겨울
묵은지 한 바가지 얻어 먹이고
오뉴월 뙤약볕에 콩밭 메어주던 날
그 때도 꿈은 있으셨죠.
어머니 오래 오래 건강하시다
먼 길 가실 때 같이 가요
저 막등이 아버지 얼굴 몰라요
소개시켜 주셔야죠
어머니
셋째 장가간 날
빚 내어 며느리 금목걸이 해주고
돈 벌로 집 나가신 날
남의 집 살이는 어떻던가요.
어머니
아들이 송금한 돈 다썼다고
귀국하는 날 딴 사람되어
개정병원까지 갔다가 돌아오신 날
맨 정신으로 아들 못 보것던가요.
어머니
남의 논 모심는 날
허리춤 옷깃에 둘둘 감췄다가
흙가시지 않은 손으로 막둥이이게 전해준
10원에 10개짜리 그 풀빵
저 그 빵 또 먹고싶어요
어머니
삶이 힘들어
행상 다녀오신 첫 날
이동네 저동네
강아지도 사납고
남정네들도 볼상 사납다고
주저 앉으신 날
저 하늘 봄비로 젖고
당신의 눈물로 젖었지요
어머니
장에 가시던 날
철없는 막둥이 떼어놓고 가시느라 힘드셨죠
보리 두되빡 싸들고 약사러 가는 날인데
속없이 따라나선 막둥이
오늘은 부끄럽네요
어머니
세상에는 마음대로 안되는 일이 있데요
내게 처음으로 삼겹살을 사준 며느리
모든 것 다 해줄 수 있는데
시아버님 라고 부를 단 한 번의 기회조차
주지 못했네요
드라마에서 다정한 시아버지 나오면
미안해서 같이 못보네요
어머니
막둥이 어렸을 때 책을 즐겨 보던가요
논매는 어머니 옆에서 흙 장난을 즐겨 하는가요
이 나이에 다시 한번 기로에 서네요
어머니
우리와 같이 찍은 사진들
왜 어머니만 잘라내셨어요
그리 사셨어도 모자람이 있었나요
어머니
앞 선 딸이 보고싶고 그립죠
딸 볼 일이 걱정스럽죠
저도 누님이 그립숩니다
어찌볼까 하네요
지금도 수화기를 들면
가끔 누님네 전화번호를 습관처럼 누르고 마네요
받지 않네요
어머니
들판 건너 아버님 산소
흰 천조각이 울먹거리데요
그 날
땀베인 모시적삼을 잎은 어머니 당신이셨죠
어머니
당신의 모진 세월
팔폭 병풍으로 다 가려질까요
어머니
해질녁이면 항상 눈물을 보이셨죠
왜 그러셨어요
쉰이 되는데도
여자의 눈물에 등 돌려요
아마도 그 때 어머니의 눈물이 싫었었나 봐요.
어머니
이제야 그 연유를
알고 싶은데
정녕 당신은 몰라 몰라만 하고 계십니까
오늘도
사악한 자식은
내 살 아프다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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