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대한민국- Korea) 독도

대마도가 우리땅 이라는 문헌들

shepherd2 2008. 10. 25. 20:59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문헌들 [이것 저것 ]  choidk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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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문헌들

"너희 섬(:대마도)은 조선 지방이니, 마땅히 조선 일에 힘을 써야 한다."
― 에도 막부(江戶幕府) 장군의 측근이 대마도 고위관리에게 한 말. 서기 1617 년 통신사 이경직(李景稷 : 1577∼1640)이 자신들(통신사 일행)을 수행하던 대마도의 고위관리에게 이 말을 듣고 적어 놓았다.

대마도는 … 대대로 우리 조정의 은혜를 받아 조선의 동쪽 울타리를 이루고 있으니, 의리로 말하면 임금과 신하 사이요, 땅으로 말하자면 조선에 부속된 작은 섬이다.
― 서기 1590 년, 임진왜란 직전에 통신사 부사로서 일본을 다녀온 김성일(金誠一 : 1538∼1593)이 조선에 돌아온 뒤 낸 보고서에서

우리 대마도에게 조선 영토 안의 주 군(州 郡)의 예에 따라 주(州)의 명칭을 정하여 주고 인신(印信 : 도장)을 주신다면 마땅히 신하의 도리를 지키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 서기 1419 년 대마도 정벌 뒤에 대마도주가 보낸 서신에서.

(전략) … 이곳은 일본 국왕의 명령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중간에서 망령되게 자존하면서 포악하오나, 이들 모두 도서(圖書)를 받고 우리 조정에 귀순하기를 바라고 있사오니, 바라옵건데 이 섬의 두목들에게 예전처럼 오고 가게 하고, 이따금 양식이나 주고 도서를 주어 뜻밖의 우환에 대비하게 하소서.
― 서기 1444 년 대마도에 보내졌던 초무관 강권선(康勸善) 이 世宗에게 보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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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후반(1000년경)부터 13세기 후반(1200년경)까지 200여 해 동안 對馬島의 高麗에 대한 진봉관계(進封關係)가 연구로 밝혀지고 있습니다.(대마도는 고려 때에도 우리의 영토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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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가요약기(山家要略記)』(:12 세기 말 일본 천태종의 승려가쓴 책)에 말하기를 "대마도는 고려국의 행정치소인 목(牧 )이다. 옛날에는 신라 사람들이 살았는데, 개화천황(開化天皇)대에 이 섬(대마도)으로부터 (일본본주로) 습래(襲來)해 왔다. 중애천황(仲哀天皇;신공황후가 섭정) 이 풍포궁(豊浦宮)에서 나와 대마도 악포(鰐浦)에서 新羅(당시 對馬島에 있던 佐護加羅 중심의 新羅임)를 정벌함으로써 마침내 이 섬을 얻었다."고 하였다.
― 1723 년 對馬島人 등정방(藤定房)이 쓴 대마도의 역사서인『대주편년략(對州編年略)』에서

무릇 對馬島는 옛날에는 新羅國과 같은 곳이었다. 사람의 모습도 그곳에서 나는 토산물도 있는 것은 모두 신라와 다름이 없다.
― 13세기 말의 일본 책인『진대(塵袋)』 제 2권에서

『高麗史』에 의하면 고려는 선종 2년(1085) 이래 대마도주를 '대마도구당관(對馬島勾當官)'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흥미롭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제주도의 성주(星主)를 '탐라구당사'(耽羅勾當使)로, 일기도(壹岐島 : 대마도와 구슈 섬 사이에 있는 이키 섬) 도주(島主)를 일기도구당관(壹岐島勾當官)이라고 명명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당관은 高麗時代 변방 지역 내지 수상(水上)교통의 요충지를 관장하는 행정 책임자들에게 붙인 관직명이다. 이를 보면 탐라, 대마도, 일기도의 지배자에게 고려가 구당사 혹은 구당관이란 명칭을 붙인 의미를 알 수 있다. 즉 앞의 세 섬을 고려의 속령(屬領: 영토로 속한 땅)으로 인식하였거나 아니면 고려 정부가 대마도와 제주도를 고려 고유의 지배 질서 속에서 같은 차원으로 취급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마도는 섬으로서 본래 우리 나라의 땅이다. 다만 궁벽하게 막혀 있고, 또 좁고 누추하므로 왜놈이 거류하게 두었더니 개같이 도적질하고 쥐같이 훔치는 버릇을 가지고 경인년부터 뛰어놀기 시작하였다.
― 태상왕(太上王)이었던 太宗이 世宗 때 대마도 정벌을 하기 전에 군사들에게 내린 교유문(敎諭文)에서

대마(對馬島)는 섬으로서 경상도의 계림(鷄林)에 예속되었던 바 본시 우리 나라 땅이라는 것이 문적(文籍 : 서적, 기록)에 실려 있어 확실하게 상고할 수 있다. 다만 그 땅이 매우 작고 또 바다 가운데 있어서 왕래함이 막혀 백성들이 살지 않았을 뿐이다.이에 왜놈으로서 그 나라에서 쫓겨나 갈 곳 없는 자들이 몰려와 모여 살며 소굴을 이루었던 것이다.
― 대마도를 정벌한 뒤 대마도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마도는 본래 조선의 목마지(牧馬地 : 말 기르는 땅)이므로 대내전(大內殿)이 조선과 더불어 협공하여 대마도를 귀국(貴國:朝鮮)에 돌리고자 하다가 불행히도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의 영주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 대마도 정벌 이후 일기도로 파견된 조선 관리인 강권선(康勸善) 에게 壹岐島 영주 대내전(大內殿)의 관반(館伴)인 노라가도로(老羅加都老)가 한 말.

풍신수길(豊臣秀吉)이 조선 침략에 대비하여 무장에게 명령해서 만든 지도인『팔도전도(八道全圖)』에는, 獨島 뿐 아니라 對馬島도 朝鮮의 땅으로 나와 있으며, '공격 대상'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일본도 대마도를 일본 땅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대마도가 우리땅이라는 고지도들


경상도(慶尙道輿地圖)



고지도(古地圖)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


대한여지도(大韓輿地圖)



동국대총도(東國大摠圖)




조선내란지도(朝鮮內亂地圖)



조선방역도(朝鮮方域圖)



조선전도(朝鮮全圖)




조선전도(朝鮮全圖)



조선팔로지도(朝鮮八路地圖)


조선총도(朝鮮總圖)



해좌전도(海座全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