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2월 20일 토 조선일보 1면 '희망편지 '에
실린 글입니다 )
--블로그 희망편지 --
두 아들과 함께 미국 LA에 살 때,
나는 주식투자를 했다가 쫄딱 망했다.
1원도 남지 않고 폭삭 망했다. IMF로 세상이 지옥처럼
변해버린 1998년이었다. 그 충격을 도저히 이겨낼 방법이
없던 나는 무작정 하와이행 비행기를 탔다.
"물에 빠져 죽어야겠다."
오아후섬 북쪽에 터틀베이라는 해변이 있다.
파도가 거칠기로 유명한 바다다. 밤이 이슥할 무렵
정신을 놓아버리고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죽는다, 나는.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가슴 울컥한 일이 벌어졌다.
한 걸음을 바다로 들어가면 파도가 나를 뒤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온몸에 멍이 들 정도였다.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다니, 화가 났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는 백사장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그 바다가 나더러 살라고 격려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마치 나를 세상으로 떠밀어주며
살라고 고함을 지르는 것 같았다. 나는 완전히 기력이 빠진
몸과 황홀한 부활의 의지를 안고 터틀베이를 떠났다.
며칠 뒤 푸나후스쿨이라는 학교를 찾았다.
한 해 수업료가 1만달러가 넘는 좋은 사립학교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다닌 학교로 유명하다 .
해마다 봄이면 푸나후스쿨에서는 축제가 벌어진다.
축제 마지막 날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1달러를 주고
커다란 대봉투를 사면 시장에 나온 모든 것을 욕심껏
봉투에 담아갈 수 있다.
숟가락, 신발, 옷, 냄비, 밥솥, 프라이팬에 아보카도와
파인애플까지.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부자들이
아무 조건 없이 내놓은 것들이다. 빈손으로 가난한 나는
거기에서 내게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었다.
그 속에는 희망도 들어 있었다. 이제 다시 사는 거다.
그리고 무작정 하와이의 한 방송국을 찾아갔다.
오랫동안 방송작가로 일한 경력을 보고
일자리를 줬다. 마침 한류 열풍이 하와이에 상륙한 때라,
드라마 세미나에서 특강도 맡았다.
그때 한 교수가 하와이에 온 이유를 물었다.
"너무 절망해서 죽으려고 왔다"고 했더니 ,
그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인생의 밑바닥까지 가보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생각하라"고. "절망의 밑바닥, 그거 언제 가보겠는가.
게다가 당신은 작가가 아닌가. 인생의 끝.밑창을
경험해야 좋은 글도 나오는 것이다"라고.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을 찔렀다.
죽으러 갔던 섬에서 나는 5년을 더 살게 되었다.
아들들은 LA에서 공부를 마치고 성인이 되었고,
나는 제2의 생을 하와이에서 창조하며 살았다.
지금은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과 함께
서니베일 과수원길에 살고 있다.
혹독한 비바람 지나고 나면 절망도 추억이 된다.
살아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축복이고, 한없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