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곰탱이님의 블로그에서 옴김.
폐암 말기로 여든 일곱이나 되는 할아버지 한분을
요양원에서 만났다.
일주일에 두어 번 씩 찾아가 돌보면서
그 어르신의 아픔을 함께 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 만은 아니었다.
어르신의 지난 삶의 아픈 상처를
나의 삶으로 공감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말과 몸짓도 그분에게 위로가 되지 못함을 잘 안다.
짧은 만남이지만 그 어르신은 만날 때 마다
기고만장한 지난 삶을 털어 놓기가 일수이고
그것이 그분의 삶이고 낙인 모양이다.
나이가 들면 남의 이야기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쏟아 붓는 수다가 많고
고집만 피운다는 말이 맞는가 싶다.
“ 나 젊었을 때 한가락 했어, 잘 살았어!
권력도 남부럽지 않았구, 할 짓 안할 짓 다 했어 !”
만날 때 마다 틀어대는 낡은 레코드판을 처음 듣는 것처럼
수용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어르신이 어느 날 부터인가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하셨다.
하루하루 자기 앞에 다가오는 죽음을 직감한 듯 통 말이 없으셨다.
그런 어르신을 대할 때 마다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는 자책과 함께
그분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 가을이라 창 밖에 낙엽이 떨어지네.
나도 저 낙엽처럼 곱게 물들어 떨어졌으면 오죽이나 좋겠어!
지금 내가 가장 후회하고 있는 거 무엇인지 알아? ”
목이 메는 듯 침을 꿀꺽 삼키며
더 이상 말을 있지 못하시는
어르신의 눈빛은 연민에 가득 차 있다.
“ 날 자주 만나 알겠지마는 내 성질이 고약해!
그 때 내가 좀 더 참았더라면 사람 노릇 했을거야,
암, 그렇고 말고! ”
가부장적 권위주의 때문에 남을 힘들게 하셨다고 참회하셨다.
나이가 들고 더구나 죽음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것은
하늘의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르신은 숨이 찬 듯 일으켜 달라며 얼음물 한 컵을 청하셨다.
몇 모금 마시고는 또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 나 쓸 때 없는 자존심 때문에 아내한테 지고는 못살았던 사람이었어.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안했어,
그러나 아내만은 정말 사랑 했었어!
참 착하고 마음씨 고운 여자였어! ”
그 어르신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한 번도 표현하지 못한 채
아내를 10년 전 하늘나라에 먼저 보냈다는 아픔이란다.
아내가 숨을 거두는 날 아침이었단다.
아내를 그냥 하늘나라에 보내서는 아니 되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일찍 일어나 찬물로 세수하면서
몇 번이고 연습한 말이 있었단다.
“ 여보! 날 용서하구려,
고약한 남편이지만 당신만은 정말 사랑 했었어!
먼저 하늘나라 가있어,
내 곧 갈 꺼야,
그때 버선발로 뛰어나와 날 마중할 수 있지?
정말 당신을 사랑했었어! ”
병실 문을 박차고 아내 곁에 달려갔을 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고 목 놓아 우셨다.
그리고 내 손을 꼭 잡았다.
“ 자네, 아직 쓸 만 해, 젊어!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참고 사는 게 약이야,
인지미덕 알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 잊지 말고 꼭 해야 해 ! ”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친다.
눈물을 꿀꺽 삼키며 연거푸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창 밖에는 석양에 곱게 물든 단풍잎이
갈바람을 타고 비 오듯 쏟아졌다.
어르신의 가슴에도 내 가슴에도 한없이 쏟아져 내렸다.
글쓴이. 대전광역시, 정하득
I Love You / Giovanni Mar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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