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대한민국- Korea) 독도

일본과 러시아의 북방 영토 분쟁 2/2

shepherd2 2009. 3. 3. 10:35

일본과 러시아의 북방 영토 분쟁 2/2

2차 대전에서 “대일본제국” 패망 하고 미군의 GHQ에 의한 군정을 거쳐서 일본국 헌법이 새로 제정되고 일본 영토는 연합국측이 정한 내용대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서명되면서 일본국은 국제사회에 복귀한다. 2차대전 도중 까지는 일본과 소련이 불가침조약을 맺고 있었으나 전쟁 말기에 소련이 불가침 조약을 깨고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으므로 일본이 항복했을 때 사할린 섬 전부와 쿠릴 열도는 소련군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 천황이 라디오 방송으로 항복 선언을 한 것이 1945년 8월 15일이고 항복 문서에 서명한 것이 9월 2일, 연합국이 도쿄를 점령한 것이 9월 8일이다. 한편 소련군이 쿠릴 열도를 점령한 것은 에토로후, 구나시리, 시코탄은 8월28일부터 9월1일까지, 하보마이 제도는 9월3일부터 5일까지이다.




독도와 북방영토를 일본의 통치 범위 밖으로 지정한 맥아더 라인. 현재는 일본 땅으로 반환된 가고시마현 아마미 오오시마, 오키나와의 섬들, 태평양의 오가사와라 제도도 제외되어 있다.

일본을 점령한 GHQ의 SCAPIN 677지령으로 하보마이, 시코탄을 포함한 쿠릴 열도 전부가 일본의 통치 범위에서 제외되었다. SCAPIN 677은 독도를 일본 통치 범위 밖으로 지정한 바로 그 지령으로 이때 설정된 이른바 맥아더 라인은 독도와 함께 북방 4도도 일본 영토에서 제외한 것이다.

당시 이 지역에는 일본인이 1만 7천명 정도 살고 있었으나 소련과 GHQ의 합의에 따라 1949년까지 대부분의 일본인이 일본 본토로 귀환했다. 그러나 이때 일본 국적을 박탈당한 한국인들은 귀환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므로 그대로 남거나 사할린 섬으로 이주해서 냉전이 계속될 당시 사할린 억류 한국인 문제의 불씨가 되었다.

독도 문제와 마찬가지로 북방영토 문제도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 초안 단계에서 일본이 포기할 쿠릴 열도의 정의가 어디까지인지 여러가지 논란이 있었다. 평화조약의 내용을 논의하는 일본 국회에서 일본 정부는 구나시리, 에토로후의 두 섬은 쿠릴 열도에 포함된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구나시리, 에토로후의 두 섬은 캄차카 반도에서 홋카이도로 이어지는 쿠릴 열도의 한 부분임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그러나 하보마이, 시코탄은 이 섬들보다 남쪽에 있으며 홋카이도의 동쪽에 있는 네무로 반도의 끝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이 섬들은 쿠릴 열도의 일부가 아니라 홋카이도의 일부라고 해석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세세한 내용을 따지면 하보마이는 홋카이도에 속해도 시코탄은 쿠릴 열도 일부라고 보는 견해도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 내용을 논의할 때 일부에 있었다. 그러나 이 섬들은 소련에 점령당한 상태였고 소련은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에 결국 서명하지 않았다.

소련이 서명하지 않은 이유는 평화회의에 중국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차대전 종료시에 장개석의 중화민국 정부는 연합국의 주요 일원이었으나 모택동에게 밀려서 대만으로 쫓겨난 상태였다. 연합국 대표 일원인 중국 대표가 중화민국 정부인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인지 연합국간의 의견이 엇갈리는 상태에서 결국 "중국" 대표의 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후 일본과 소련은 1956년 국교정상화를 하게 되고 이때 일본은 소련측에 현재의 북방4도 뿐 아니라 쿠릴 열도 전체, 그리고 사할린 남부까지 일본에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포기한 영토까지 전부 되돌려달라는 것이 뻔뻔스럽게 들리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소련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은 것을 반환 요구 근거로 삼았다. 물론 소련이 이 요청을 들어 줄 리가 없었다.

참고로 샌프란시스코 조약만 따지면 현재의 오키나와, 오가사와라 제도, 아마미오시마 등의 남쪽 섬들도 일본 영토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후에 미국이 전부 일본에 반환했으므로 일본측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최종적으로 일본 영토를 정한 것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기는 하다.

결국 회담을 거듭한 끝에 소련측이 하보마이 제도와 시코탄 섬을 반환하는 것으로 양측이 합의를 보았으나 여기에 미국이 개입하고 나섰다. 소련을 견제하려는 미국은 구나시리, 에토로후의 반환도 소련측에 요구하지 않으면 오키나와를 영구히 일본에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일본측을 위협했다. 결국 일본과 소련이 평화조약을 맺을 때 시코탄, 하보마이를 반환할 것이라는 공동선언문에 그쳤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초안 작성시에 일본이 포기하는 쿠릴 열도의 범위를 정하는데 미국측은 구나시리, 에토로후는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으며 일본 영토로 남는다는 주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영국, 프랑스는 구나시리, 에토로후도 쿠릴 열도에 당연히 포함된다는 입장이었고 프랑스의 경우는 일본 국회에서 일본 정부 측이 "구나시리, 에토로후는 남쿠릴 열도"라고 말한 것을 인용하기도 했다.

사실 일본 정부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말한 쿠릴 열도에 구나시리, 에토로후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1956년부터이다.

결국 일본과 소련간의 국교정상화는 했지만 평화 조약은 체결되지 않았고 1961년에 소련의 흐루시쵸프는 영토문제는 끝났다고 발언함으로서 하보마이, 시코탄만이라도 돌려 받는 것도 끝난 일 처럼 보였다. 하보마이, 시코탄 반환을 약속한 소련과 일본의 공동선언의 효력도 끝난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고르바쵸프 정권 이후 또다시 당시의 공동선언을 존중하는 태도로 바뀌었다.

현재의 일본 정부 공식 견해는 하보마이, 시코탄만 반환 받은 것이 아니라 4도를 일괄 반환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가들 사이에서는 2도만이라도 먼저 반환 받을 것을 주장하는 2도 선반환론도 있고 2도만 받고 끝내자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북방4도의 면적을 절반으로 나눠서 가지는 것은 어떻냐고 주장하는 정치가도 생겼다.

러시아는 일관되게 시코탄, 하보마이를 반환하면 최종적으로 결착이 나는 것이라는 입장이었고 최근에는 2도 반환 조차도 비판적이다. 소련 시대와 러시아 경제가 어려웠을 시기에는 북방 4도 주민들이 러시아 지배를 받는 것 보다 경제대국인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을 원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전망도 있었으나 요즘은 러시아 경기가 매우 좋기 때문에 하보마이, 시코탄에 거주하는 러시아 사람들도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히 찬성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도 반환 후의 주민들에 대한 정책도 전혀 내놓지 않고 있으므로 이 섬들의 인구 증가와 발전에 따라 현실적으로 점점 반환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니 진짜로 북방영토를 되찾을 생각이 있는지 의문시하는 견해도 있다.

정리해보면....

일본측의 주장
- 북방영토는 2차대전 이전까지 한번도 러시아 땅이 된 적이 없다
- 1855년의 일본, 러시아간 조약으로 에토로후 섬과 우룹푸 섬 사이에 국경선이 그어졌다.
- 1875년의 사할린과 쿠릴 열도 교환 조약 당시 교환 대상이 된 쿠릴 열도는 우룹푸 섬의 북쪽에만 해당된다. 당시 맺은 조약은 우룹푸 섬 이북의 섬들만 쿠릴 열도라고 칭했다. (이 조약은 프랑스어로 맺어졌는데 우룹푸 섬 이북만 쿠릴 열도이고 우룹푸 섬 이남의 구나시리, 에토로후 등은 쿠릴열도에 포함되지 않는 다는 것은 일본어 번역이 잘못된 것이라고 밝혀졌으므로 이 주장은 현재는 더이상 효력이 없다)
- 소련에게 사할린 섬 남부와 쿠릴열도를 할양할 것을 약속한 얄타 협정은 연합국간의 비밀 약속이고 법적 구속력이 없다.
- 2차대전중 일본과 소련은 1946년까지 중립 조약을 체결했는데 소련이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일본을 침략한것은 조약위반이다 (이 주장은 도쿄재판에서 불가침 조약 자체가 불성실한 것이었고 소련 참전 자체를 미국측이 요청했으며 소련의 대일 선전 포고는 정당한 것이었다고 최종적으로 판결되었으므로 일본이 도쿄 재판을 받아들인 이상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 얄타 협정 당사자인 미국이 북방영토는 일본에 포함된다는 일본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에 대하여 러시아측은 구나시리, 에토로후가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은 일본 국어사전에 구나시리, 에토로후를 미나미 치시마 (남쿠릴)이라고 나와 있는 내용과도 모순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러시아 입장에서는 일소중립조약 파기와 대일선전포고는 모두 정당한 것이고 얄타 회담에서 연합국측이 소련이 참전하면 쿠릴열도와 사할린 남부는 소련이 가질 것을 약속한 것도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일본은 1956년 이전에는 구나시리, 에토로후가 쿠릴 열도에 포함된다고 발언했으면서 갑자기 말이 바뀐 것을 문제삼는다.

참고로 일본이 사할린 남부와 쿠릴 열도를 지배할 때 행정 구역이 홋카이도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홋카이도, 미나미카라후토 (사할린 남부), 치시마 (쿠릴 열도)등 서로 행정 구역이 달랐다. 쿠릴 열도에 거주했다가 2차대전후 일본 본토로 귀환한 사람들이 1963년 거주자 연맹을 발족했을 때 연맹 이름이 사단법인 치시마하보마이거주자 연맹이었다. 이 명칭만 보아도 하보마이 제도만 치시마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고 구나시리, 시코탄, 에토로후는 치시마 (쿠릴 열도)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으며 "치시마"에 북방 4도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억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87년에 일본 잡지 "세계"의 5월호를 통해 당시에 일본정부가 주장하던 1875년의 사할린과 쿠릴 열도 교환 조약에서 쿠릴 열도에 북방4도가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일본어 번역 잘못인 것이 입증되었다.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날조라는 주장도 있다)

1875년의 조약문서의 번역 오류가 밝혀지기 전에 일본 국내에서는 북방영토 반환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1981년에 북방영토의 날이 제정된다. 시마네현에서 만든 "다케시마의 날"도 결국 "북방영토의 날"을 흉내낸 것이다.

우스운 것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소련이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할린 남부와 북방영토 이외의 쿠릴 열도는 일본의 통치 범위에서 제외되었지만 소련/러시아의 지배가 국제법상 인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것이 공식적인 견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 판매되는 지도를 보면 북위 50도선 이남의 사할린 섬 남부와 에토로후 섬 이북의 쿠릴 열도는 러시아 땅이 아닌 "귀속 미정 지역"으로 공백으로 표시되는 경우가 많고 북방4도는 일본 땅으로 표시한다.

에토로후 섬 까지의 북방4도는 일본땅, 에토로후 이북의 쿠릴 열도와 사할린 남부는 러시아 땅이 아니라 귀속 미정지로 표시된 일본 지도.에토로후 섬과 우룹푸 섬 사이에 국경선이 그어져 있다. 이런 지도는 대체로 울릉도와독도 사이에 국경선을 그어 놓은 경우가 많다.


(다만 1970년대 이전 지도는 북방영토와 사할린 남부 전부를 소련 땅으로 표시한 지도가 많은데 북방영토 반환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이런 태도를 보이게 된 것이다. 물론 세계적으로는 북방영토는 러시아 영토로 표시되거나 분쟁지역으로 표시되는 경우가 많고 사할린 남부와 북방영토 이북의 쿠릴 열도는 당연히 러시아 영토로 표시된다)


일본 이외의 세계 지도는 북방 영토 포함 쿠릴 열도 전부와 사할린 전체가 러시아 땅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이 현재 가지고 있는 외국과의 영토 문제는 1. 북방영토문제 2. 독도문제 3. 센카쿠 제도 문제 4. 오키노토리시마 문제 등이 있다. 영토 크기와 중요도에서 북방영토가 가장 상위에 들어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전혀 보이지 않고 하보마이, 시코탄 2도 반환이라면 몰라도 4도 전부 반환하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3의 센카쿠 제도 문제는 일본이 실효 지배중이므로 간혹 중국이나 홍콩, 대만의 시민운동가가 상륙을 강행하여 체포되는 뉴스를 보는 정도이다. 4의 오키노토리시마 문제는 영유권 분쟁이 아니라 EEZ를 설정할 수 있는 섬이냐 암초냐 하는 것이 쟁점인데 솔직히 일반적인일본 국민이 보아도 인간이 거주하는 것이 불가능한 암초를 억지로 콘크리트로 메운 이곳이 EEZ를 가진다는 일본 정부측 주장에 회의적이다. 요즘은 산호초를 번식 시켜서 "억지로" 자연적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섬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북방영토 문제는 독도 문제와 마찬가지로 2차대전 이후의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원인인 만큼 사실상 해결이 어렵다.
지금까지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하보마이, 시코탄의 2도는 반환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런데 비현실적인 4도 일괄 반환 주장을 꺾지 않아서 결국 2도 조차 반환받는 것이 어려워졌다.  가장 마지막에 찾아온 기회는 몇년전 고이즈미 수상 시절 푸틴 대통령이 2도 반환에 유연한 자세를 보였을 때 이다. 그런데 이때 홋카이도 출신 국회의원으로 북방영토 반환 (2도 반환론자)에 적극적으로 관여해 온 스즈키 무네오씨의 스캔들이 터지고 일본 정부는 끝까지 4도 반환 주장을 굽히지 않음에 따라 끝난 얘기가 되어 버렸다.

한가지 고려할 점은 일본 정부가 진심으로 북방 영토를 반환 받기를 원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실 영토 문제를 빌미로 러시아와 긴장 상태를 유지하려는 속셈이 아닐까. 긴장 관계를 조성함으로서 일본 자민당과 우익들이 염원하는 평화 헌법 개정 (일본이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고 무력을 분쟁 해결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는 일본 헌법 9조 개정)을 실현시키기 위한 준비 라고 볼 수도 있다.

독도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이 문제를 제소한다고 하지만 한국이 응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한국을 자극함으로서 일본 국내의 여론을 환기시키고 북한, 러시아, 중국, 한국 등 일본 주위의 국가들과 긴장감을 고취시킴으로서 헌법 개정과 자위대를 정식으로 일본 군대로 만드는 그들 말대로 "보통 국가 일본"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또한 영토문제는 정치가들과 정부, 그리고 관련 단체의 이권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매년 영토 문제에 관한 예산을 편성하고 관련 사업으로 예산을 받고 있다 이런 단체들과 관련 정치가들은 영토 문제가 계속 남아 있는 이상 단물을 빨아먹을 수 있는 구조이다.  영토 문제 관련 사업은 일본 국민들로부터 혈세를 낭비한다는 비난도 거의 받지 않는다. 이런 이권 단체들로 부터 한국 국민들만 우롱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국민들도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방영토의 주민들... 북방영토가 일본에 반환되어 이 주민들이 러시아 본토로 이주하거나 일본 국내의 소수민족으로 된다는 것은 솔직히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북방영토중 두번째로 큰 구나시리 섬의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 국내에도 북방영토 반환 운동을 반대하는 세력이 일본 국내에도 있다. 원래 이 땅에 거주하던 아이누 민족으로서는 보면 원래 자기들이 살던 땅을 고유영토 어쩌고 하면서 일본과 러시아간에 아이누 민족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인 것이다.

 

 

[원문출처: http://kr.blog.yahoo.com/ppao2/1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