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털 싸이트에서 옴긴글 --------
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WBC 경기도 대강 대강 보는 편이지만 그래도 꼴에 한국인이라고 간혹 지나가는 눈으로 경기를 보고 있으면 그 팽팽한 긴장감이라는 것에 슬며시 녹아들곤한다. 이럴 때면 나도 별 수 없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사실 어느 스포츠를 막론하고 국가 대항전이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바라보면 그리 좋은 평을 하기는 어렵다. 스포츠라는 '놀이'에 애국심이 보태지고 자본이 손길을 뻗고 하면 스포츠는 더이상 놀이가 아니라 '추상화된 전쟁'이 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결국 올림픽이니 월드컵이니 하는 국가 대항전이란 것들은 어설픈 애국심과 스포츠라는 놀이를 버무려 돈벌이하는 자본의 한바탕 잔치일 뿐이며 이 과정에서 스포츠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단지 놀이와 전쟁의 사이 중간에서 정신이 혼미해진 취객일 따름이다.
제대로 따지고 보면 본디 스포츠란 것 자체가 자본주의 이후 자본 세력이 과거의 '놀이'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가공한 것에 불과한 것이니 이런 것에 일일이 알러지 반응이 이는 사람이라면 깔끔하게 '자본주의를 뒤엎자'라고 말하는게 좋을 것이다. 스포츠는 이미 '자본화'라는 이념을 받아들인 상태이니 여기서 스포츠에 대해 '놀이'의 순수함을 말하자는 것은 잘해봐야 위선에 불과한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스포츠는 이미 그 자체로 순수하지 않다. 우리가 말하는 순수한 스포츠라는 것은 동네 축구나 길거리 농구같은 곳에나 있지 돈받는 선수가 존재하는 프로 세계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애당초 있지도 않는 스포츠의 '순수'를 찾아 헤멜 필요는 없다.
<마운드에 태극기를 세우고 있는 이진영과 봉준근>
태극기 세레모니와 내셔널리즘
스포츠에 대해서 이런 부정적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과 별개로 나 역시도 스포츠를 좋아하는 편이다. 이건 술의 해악을 아는 것과 술을 마시는 문제가 다른 문제 인것과 같은 것이다. 건강 해칠 걸 알고도 마시는게 술이듯 스포츠도 부정적인 점을 알고도 즐기는 '놀이'다. 때문에 '이렇게 스포츠가 문제니 즐기지 마라'고 설명해 봐야 먹히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내가 구태여 이런 소리를 늘여놓는 것은 어제 일본과의 경기 후 보여준 한국의 태극기 세레모니 논란 때문이다. 경기 승리 후 한국팀은 마운드에다 태극기를 심어놨다. 보통 고지에 깃발을 세운다는 의미는 전쟁에 있어 점령을 뜻하는 것이고 보면 결국 이 세레모니는 '한국 야국가 일본을 점령했다'는 의미를 담은 것 일게다. 봉준근 선수와 이진영 선수가 실제 그런 마음가짐으로 심었는지와는 별개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은 부정 할 수 없다.
만약 그냥 태극기를 흔들거나 몸에 감고 뛰는 세레모니였다면 논란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세레모니가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점령이라는 전쟁 코드와 오버랲이 된 탓이다. 이게 아마 내셔널리즘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일 것이며 분명 일본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좋지 않았을 세레모니다. 그러나 이걸 두고 '촌스런 한국의 내셔널리즘'을 운운한다면 그것은 황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내셔널리즘이 못마땅 한 사람이라면 애당초 WBC자체를 문제삼는게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가 대항전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경기를 치르는 것 자체가 내셔널리즘적인 행위인데 이 내셔널리즘적인 대회를 그동안 잘 즐겨놓고 이제와서 갑자기 인터내셔널적인 포즈를 취하며 세레모니 문제 삼는 것은 모순된 행위다.
이미 스포츠는 순수하지 않다. 패자에 대한 배려라고 하는 이른바 스포츠의 순수함이라는 것은 스포츠가 '놀이'의 수준에 머무는 동네 스포츠에서나 기대 할 수 있는 일이다. 축구건 야구건 이긴 자가 패자의 입장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까놓고 승리자의 쾌를 즐기는게 자본주의의 스포츠며 이미 세계는 이런 행위를 수용했다.(이게 옳다는게 아니다. 옳지 못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미 관용의 범주의 속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태극기를 꼽느냐 태극기를 흔드느냐 하는 문제는 단지 정도의 차이일뿐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른게 아니다. 스포츠의 '순수', 놀이의 '순수'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동네 스포츠를 즐기거나 아니면 앞서 말했듯이 자본주의를 뒤엎자고 주장하는게 깔끔한 행위다. 왜 자꾸 있지도 않는 '순수'를 찾는지 모르겠다. 술을 마셨다면 주정은 예정된 수순이다. 주정을 탓할 거라면 애당초 술을 마시지 않았어야 옳다. 같이 실컷 마시고 즐겨 놓고는 상대의 술주정을 타박하면 앞으로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참고로 이것은 거꾸로 일본이 승리 후 마운드에 깃발을 꼽는다 하더라도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의 점령 코드가 마뜩찮을수는 있지만 이걸 가지고 내셔널리즘을 운운하는 것은 분명 오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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