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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을 빛낸100명의 위인들(시대순)

shepherd2 2010. 2. 14. 22:37

한국을 빛낸100명의 위인들(시대순)

 <고조선>
1.단군 할아버지

우리 민족의 시조, 고조선의 첫 임금. 천제 환인의 손자이며 환웅의 아들.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서울을 정하고 단군 조선을 세웠다. 단군에 관한 '삼국유사'의 기록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하늘의 황제인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가 인간을 구원하고자 원하므로, 환인은 천부인(하늘나라 왕의표지)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도록 허락하 였다. 환웅은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에 내려왔는데, 이 분이 환웅 천왕이다. 환웅이 360여 가지 일을 맡아 다스릴 때 곰과 범 한 마리가 사람이 되게 하여 달라고 환웅에게 빌었다. 환웅은 쑥 한 줌과 마늘 20쪽씩 주면서,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으로 태어날 것 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먹으며 굴 속에 있던 중 범은 참지 못하고 도중에 뛰쳐나갔으나, 곰은 잘 참아 내어 37일 만에 여자로 변하였다.
이 웅녀가 아기 갖기를 원하자, 환웅이 잠시 변하여 웅녀와 혼인함으로써 단군을 낳게 되었다고 한다. 단군은 인간으로서 처음 왕이 되어 1500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리다가 기자에게 임금의 자리를 물려 주고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삼국시대>
2. 동명왕

동명성왕. 고주몽.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씩씩하여 7세가 되자 활도 잘 쏘았다 그러자, 금와왕의 일곱 아들과 신하들은 시기하여 주몽을 죽이려 하였다. 주몽은 유화 부인의 말에 좋아서 졸본 부여로 내려가 나라를 세우니, 이 나라가 곧 고구려이다. 기원전 36년 비류국 송양왕의 항복을 받은 다음, 기원전 34년에 성곽을 쌓고 궁궐을 세웠다. 이어서 해인국을 정벌하고 북옥저를 멸망시켰다.
3. 온조왕
백제의 시조(재위 전 18~28).
고구려 시조 동명 성왕의 셋째 아들.

기원전 5년 남한산으로 도읍을 옮기고, 9년 마한을 멸망시켰으며, 10년에 는 아들 다루를 태자로 세웠다.
4. 박혁거세
알에서 나왔다는 설화가 있으며 신라의 시조.

기원전57년 13세에 왕위에 올라 17세 때 왕비를 맞고, 왕비와 함께 전국을 돌면서 농사. 양잠을 장려했다. 국호를 서라벌, 서울을 금성이라 정하고 궁성을 쌓아 국가의 기초를 세웠다. 사람들은 박과 같이 큰 알에서 나왔다고 하여, 박(朴)이라는 성을 붙였고, 박이 또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는 뜻에서 혁거세라 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5. 광개토대왕
고구려 제 19대 왕(재위 391~412). 고국 양왕의 태자.

이름은 담 덕. 12세 때인 386년 태자로 책봉되고 아버지가 일찍 죽자 17세 때에 왕위에 올랐다. 작은 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 그는, 아깝게도 39세로 죽었다. 왕이 된 후 하루도 궁궐에서 편히 쉬지 못하고 전쟁터를 달려 배달 민족의 영웅으로서 높이 존경 받고 있다. 그의 능은 자세하지 않으나, 414년에 장수왕이 만주 봉천 지안현 퉁커우에 세운 광개토대왕의 능비에 그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묘호는 국강상 광개토경 평안호 태왕이다. 사상 최대의 영토를 가진 고구려의 대왕.
6. 이사부
신라시대 장군.

541년(진흥왕 2) 병부의 책임자이자 당시에는 상대등?시중을 겸할 수 있던 병부령이 되어 562년까지 실권을 장악하였다. 545년에는 국사 편찬을 제안하여 거칠부 등이《국사》를 편찬하는 계기를 이루었다.

우산국(울릉도)를 정복하고 국사를 편찬한 신라의 장군.
7. 백결선생
방아타령을 만든 거문고의 명수
8. 의자왕
의자는 휘로서, 그는 왕의 시호가 없다. 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나632년 (무왕33)태자로 책봉. 효성과 형제애가 지극하여 해동증자 라 일컬었다. 642년 친히 신라를 공격하여 미후성등 40여성을 빼앗았고, 이어 윤충 으로 대야성(경남 합천)을 함락시켜 성주인 품석을 죽이는 등신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듬해에도 당항성 (남양)을 빼앗아 신라가 당나라로 가는 입조의 길을 막는 등 국위의 만회에 힘썼다.
삼천 궁녀를 거느렸던 백제의 마지막 왕.
9. 계백
백제 말기의 장군.

당시 신라가 한강 유역을 강점함으로써 그 때 까지의 나제 동맹이 결렬되자 백제는 고구려?일본 등과 친교를 맺고 신라에 대항하였다. 황산벌에서 목숨을 잃은 백제의 충신
10. 관창
신라 태종 무열 왕 때의 화랑.

신라의 좌장군 품일의 아들이다. 어려서 화랑이 되어 널리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수련을 쌓았으며, 15세 때 이미 말 타고 활 쏘는데 능하여 태종 무열왕 김춘추에게 천거되었다.
11. 김유신
신라시대의 장군.

기생집에 발을 끊은 후 말 등에 앉아서 조는 틈에 그곳을 찾아간 준마의 목을 베었다는 일화가 있음.

 

<남북국시대>
12. 문무왕
신라의 제30대 왕(재위 661∼681).
성 김씨. 이름 법민. 태종무열왕?문명왕후의 맏아들, 비는 파진찬 선품의 딸 자의왕후.

외모가 뛰어나고 머리가 총명하며, 지략이 많았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룬 왕.
13. 원효대사
신라의 고승. 신라 때의 승려. 속성 설(薛). 법명 원효. 설총의 아버지.

648년(진덕여왕2) 황룡사에서 승려가 되어 수도에 정진하였다. 해골 물에 관한 이야기 역시 너무나 유명하죠.
14. 혜초
신라의 고승. 723년(성덕왕 22) 당나라 광저우에 가서 인도의 승려.
금강지의 제자가 된 뒤, 그의 권유로 나신국을 경유하여 인도 동해안에 도착, 불교 성적을 순례하고 파미르고원을 넘어감. 인도를 여행하고 왕오천축국전을 지은 신라의 고승
15. 장보고
신라시대의 장군.

일명 궁복. 궁파. 일찌기 당나라 서주에 건너가 무령군 소장이 되었으나, 신라에서 잡혀간 노비의 비참한 생활에 분개하여 사퇴하고 귀국하였다. 해적들의 인신 매매를 뿌리뽑기 위해 왕의 허락을 얻어 1만 명의 군사로 바닷길의 요충지인 청해(지금의 완도)에 진을 설치하고 청해진 대사가 되어 군사를 훈련하고, 해적을 소탕하였다. 837(화강왕 2)왕위 계승 다툼에서 밀려난 우징이 청해진에 오자, 이듬해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민애왕을 죽이고 우왕을 왕위에 오르게 한 뒤 감의 군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후, 시기하는 신하들이 보낸 자객 염장에게 죽음을 당했다.
16. 대조영
발해를 건국한 고구려의 유민 (발해의 시조).
왕호 고왕(재위 699~719). 668년(고구려 보장왕 27) 고구려가 망하자 고구 려 유민으로 라오허강 서쪽으로 이주하였다. 당나라의 억압에 대항하여 천문령에서 당나라 군사를 크게 무찌르고 말갈족을 합하여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699년 둥마오산 (지금의 지린성 근방)에 성을 쌓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진', 연호를 '천통'이라 정하고 왕이 되었다. 713년 고구려의 옛 영토를 거의 회복하고 국호를 발해라 고쳤다. 그 때 발해의 영토는 5천 리(동은 동해, 서는 거란, 남은 신라)에 이르고 10만여호의 집과 수만 군대 를 거느린 대국을 이룩했다.

 
<고려시대>
17. 강감찬
고려시대의 명장.

본관 금주(서울 관악구 봉천동), 초명 은천. 983년(성종2)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부 시랑이 되었다. 귀주대첩으로 유명한 고려의 명장. 18. 서희
고려의 외교가?문신. 본관 이천(利川). 자 염윤. 시호 장위.
 960년(광종 11) 문과에 급제, 광평원 외랑에 이어 내의 시랑이 되었다. 외교로 거란족을 물리친 고려의 뛰어난 외교가이자 장군.
19. 정중부
고려시대의 무신.

본관 해주. 인종 때 견룡 대정이 되고, 의종 초 교위를 거쳐 상장군을 지냈다. 고려 무신정권 쿠데타의 주인공.(정중부의 난) 
20. 최무선
고려 말, 조선 초의 발명가.

본관은 영주이다. 왜구가 창궐하자 화약제조법의 필요성을 절감,원나라이원에게서 그 제조법을 배웠다. 우리나라 사상 최초로 화포를 제작한 기술자.
21~27. 죽림칠현
고려의 문인. 도가풍으로 유유자적을 즐기던 문인들.
세상에 등을 돌리고 대나무 숲에서 산 일곱 명의 선비라는 뜻. 임춘, 오세재, 이인로, 조통, 황보항, 이담지, 함순. 중국죽림칠현과 구별해서 강좌 칠현, 해좌 칠현 이라고도 함. 우리나라 청담의 시조라 할 수 있다. 청담이란 대충 중국의 원조 죽림칠현들처럼 현실에서 벗어나 고고하게 살아가는 문인들이 나누던 철학적인 담론.
28. 김부식
고려시대의 문신?학자.

본관 경주. 자 입지. 호 뇌천. 시호 문열. 신라 왕실의 후예로서 경주의 주장인 위영의 증손자. 삼국사기를 편찬한 고려의 학자이자 정치가
29. 지눌국사
고려 시대의 승려.

1182년 승과에 급제했으나,수도에만 힘쓰기로 하였다. 창평 청원사에 들어가 '단경'을 읽고, 중생을 제도하려면 먼저 자신이 부처의 경지에 이르러야 함을 깨달았다. 지리산 상무주암에 들어가 3년간 참선하여 선의 참뜻을 깨쳤다. 송광산 길상사로 가서, 중생을 떠나 따로 뿌처가 있음이 아니라, 중생을 위하여 일하는 데에 부처가 있다고 가르쳤다.선종(참선을 중시한 불교의 한 파)과 교종 (불교의 교리를 중시한 불교의 한 파)을 하나로 합치려고 노력하여 선종 우선의 조계종을 세웠다. 죽은 뒤 국사의 관위가 주어졌다. 저서로 '수심결','진심직설', '간화 결의론','법어' 등이 있다. 조계종의 창시자.
30. 의천
고려시대의 승려. 천태종의 창시자. 
31. 이종무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의 무신. 대마도(쓰시마섬)를 정벌한 고려 장군.
32. 정몽주
고려 말기의 문신. 단심가를 지은 고려 말의 충신.
33. 문익점
고려시대의 학자. 우리나라에 최초로 목화씨를 들여왔음.
34. 최충
고려 초기의 문신.

관리 임명에는 실력을 중히 여겼으며, 직무에 성실을 다하여 공신의 호를 받았다. 72세 때 벼슬에서 물러나, 사립 학교와 같은 사숙을 열고 학자들을 기르며 여생을 보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해동 공자'라고 일컬어졌는데, 그의 제자들을 문헌공도라고 불렀다.
35. 일연
고려시대의 승려. 삼국유사를 지은 스님.
36. 최영
고려 말기의 무신.

16세 때 아버지가 죽으면서,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한 유언에 따라 평생을 청렴하게 살았다.고려의 명장.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후 억울하게 죽음 당한 충신. 그의 죽음과 함께 고려 왕조의 운명도 기울어지고 말았다. 
 

<조선시대>

37. 황희

황희정승. 고려 말 ~ 조선 초의 문신.

처음 이름 수로, 자 구부, 호 방촌, 시호 익성. 본관 장수. 개성 출생.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관이 되었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서 숨어 살았으나, 이성계의 간청으로 조선의 벼슬에 올랐다.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431(세종13)영의정이

되어18년 동안이나 재상으로 있으면서, 농사개량.예법 등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세종이 가장 신임하는 재상으로 명망이 높았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하여 만인의 존경을 받았으며, 숱한 일화를 남겼다. 시와 문장에도 뛰어나 문집인 '방촌집'을 남겼다.

(18년간 영의정 재임)

38. 맹사성

고려 말, 조선 초의 명재상.

39. 장영실

조선 시대의 과학자.

광석을 제련하거나, 무기를 만들고 고치는 , 성을 쌓는 일, 농기구를 개량하는 일 등에 뛰어난 솜씨를 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1432년 중추원사 이천을 도와 천문 관측에 필요한 간의대를 만드는 사업을 벌였다. 그리하여, 1437년 대간의. 소간의.

현주 일귀. 정남일귀(해시) 등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세종은 이 기구들을 경복궁 안의 간의대 에 보관시켰다.

1434(세종16)자격루를 완성, 4년후 흠경각의 자동 물시계인 옥루 기륜을 만듬. 세종 23년에는 세계 최초로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하여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아는 등 과학 발전에 공이 컸다.'발명의 날'은 장열실의 측우기 발명을 기념 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다. 세종은 그의 공을 기리어 상호군의 벼슬을 내렸으나, 1442년 그가 감독 제작한 왕의 가마가 부서진 책임을 지고

벼슬에서 쫓겨났다. 자격루, 옥루 등의 각종 발명을 한 세종 때의 과학자.

40. 신숙주

조선 초기의 학자.

1439년 문과에 급제하고 1443(세종25)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가서 시로써 이름을 떨쳤다.귀로에 쓰시마 섬에 들러

계해조약을 맺었다. 그 뒤, 랴오둥에 귀양와 있던 명나라 학자 황찬 에게 음운에 관해 묻고,성 삼문과 함께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만드는 데 힘썼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좌익 공신1등이 되고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다. 성삼문 등이 단종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죽자, 단종과 금성 대군을 죽이는 을 강력히 주장하였다.그 공으로 좌의정이 되 1460(세종6)에는

북방에 침입한 야만족을 정벌하여 영의정으로 올랐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 학식으로 6대의 왕을 모시며,'국조오례의',

'동국정운', '국조보감', '세조실록' 등을 편찬하는 데 참가하였다. 문화 사업에 크게 이바지 하였으나,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는 일에 협력한 탓으로 비난 받았다. 저서로 '보한재집' '북정록' 등이 있다.

41. 한명회

조선 전기의 문신. 장순왕후·공혜왕후의 아버지.

42. 이율곡

이이. 조선 중기의 학자·정치가.

사헌부 감찰을 지낸 원수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이다. 왜란을 예견해 십만양병을 주장한 문신이자 학자.

43. 이퇴계

이황.조선 중기의 학자·문신. 이언적의 '주리설'을 계승한 학자이자 문신.

44. 신사임당

조선중기의 여류 서화가. 율곡 이이의 어머니. 현모양처의 귀감이자 여류 문학자.

45. 곽재우

조선중기의 의병장.

1585(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왕의 뜻에 거슬린 글귀 때문에 파방 되었다.

46. 조헌

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47. 김시민

조선 중기의 무신.

1578(선조11)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 판관으로 있을때, 군사에 관한 일을 병조 판서에게 건의하였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 자리에서 물러남. 1591(선조24)진주 판관으로 기용 되었으며,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죽은  목사를 대신하여

성을 수리하고 무기를 갖추었는데, 그 공로로 목사가 되었다. 사천. 고성. 진해 등지에서 왜적을 무찌르고 경상우도 병마

절도사에 올라 금산에서 다시 적을 격파. 그 해 10월 왜적의 대군이 진주성을 포위하자, 3800명의 군사로 7일 동안 성을 굳게

지키며 싸워 왜적 3만여명의 사상자를 냄으로써 큰 승리를 거둠.(진주대첩) 이를 싸움에서 그는 용전 끝에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 1604년 선무 공신에 봉해지고 후에 영의정.상락 부원군으로 관위를 높여 주었다. 왜란중의 의병장.

48. 이순신

조선 중기의 명장. 조선 선조 때의 장군.

1592(선조25)임진왜란 때 옥포 앞바다에서, 사천에서 스스로 만든 거북선을 이용하여,  당항포에서 승리를 거두고,

자헌대부에 올랐다. 그 해7월 한산도에서 적선을 무찔러 역사상 유명한 한산 대첩의 큰 공을 세웠다. 이어서 정헌대부에

올랐고, 다시 안골포에서 적선을 침몰시켰다. 1593(선조 26) 남해안 일대의 적군을 소탕하고 한산도로 진을 옮겼으며,

최초로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되었다. 그 뒤 명나라의 원군이 들어오자 죽도로 진을 옮겨 서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적을 막았다.

그리고 전쟁이 좀 쉬는 듯 하자 훈련을 강화하고 군비확충에 힘썼다. 1597반대파 간신들의 모함을 받고 서울에 압송되어

사형을 받게 되었으나, 정탁의 변호로 면하고 권율의 부하 장군이 되었다. 같은 해 정유재란 , 삼도수군 통제사가 되어 있던

원균이 참패하자, 다시 삼도 수군 통제사로 임명되어, 남은 배12척으로 133척의 적선과 대결하여 31척을 쳐부수었다.

1598 11 9, 고금도로 진을 옮기고 도망가는 적선을 노량 앞바다에서 무찌르던 중 왼쪽 가슴에 유탄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

글에도 뛰어나 '난중 일기'등의 저서와 여러 편의 시조. 한시 등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한산섬 달 밝은 밤에....'란 시조는,

그의 애국심을 잘나타낸 것으로 유명하다. 투철했던 애국 정신과 뛰어난 전술로 나라를 지켜 준 그는, 죽은 뒤 영의정으로

관위가 높여지고, 우리 민족 역사상가장 존경 받는 인물이 되었다. 사적 제 112호인 아산현충사 등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제사 지낸다.

49. 태조 : 조선을 건국함. 조선의 제1대 왕(재위 13921398)

50. 정종 : 조선 제2대 왕(재위 13991400)

51. 태종 : 조선 제3대 왕(재위 14001418)

52. 세종 : 조선 제4대 왕(재위 14181450)

53. 문종 : 조선의 제5대 왕(재위 14501452)

54. 단종 : 조선 제6대 왕(재위 1452~1455)

55. 세조 : 조선 제7대 왕(재위 14551468)

56~61. 사육신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죽임당한 6충신.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

62~67. 생육신

사육신의 대칭으로 단종을 위해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6충신.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

68. 논개

임진왜란 때의 의기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기생.

진주병사 최경회의 사랑을 받았다고 함.

69. 권율

조선 중기의 명장. 행주대첩의 명장.

행주치마에 대한이야기에는 많은 이설이 있음.

70. 홍길동

서자로 태어나 온갓 무술과 도술을 익혀 약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훗날 율도국을 세우고 나중에 왕이 되는 우리나라 최초

언문소설(허균)

홍길동전의 주인공. 후에 실존인물이었음이 밝혀짐.

71. 임꺽정

조선시대의 의적.

정치의 혼란과 관리의 부패로 민심이 흉흉 해지자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창고를 털어 곡식을 빈민에게 나누어 주고 관아를 습격, 관원을 살해. 백 출신의 의적 이었으나 체포 되어 처형됨.

72~74. 삼학사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화의를 반대한 세 학사.

홍익한, 윤집, 오달제

75. 박문수

암행어사로 유명한 조선 후기의 문신.

76. 한석봉

조선 중기의 서예가.

삼년 공부와 어머니와의 일화로 유명한 조선시대 명필.

77. 단원

김홍도. 조선 말기의 화가.

안견. 장승업과 함께 조선 시대 3 화가의 한 사람이며,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풍속화가이다.

78. 김삿갓

김립. 조선시대의 방랑시인.

1811(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로 있던 조부 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한 죄로 폐족이 되었다. 방랑하며 시를 지었음.

79. 김정호

조선 말기의 지리학자.

전국을 30여 년간 두루 답사한 끝에 1834(순조 34) '청구도' 2첩을 완성하였으나 만족하지 않고 전국을 다시 답사하여

1861(철종12) '동여지도'를 다시 간행하였고, 여러 지방의 연혁. 풍속. 인물. 산수. 거리 등을 상세히 기록하여 '대동지지'

15책을 간행 하였다. '대동여지'는 손수 그리고 땅판을 새긴 것으로, 그 한 벌을 흥선 대원군에게 바쳤는데, 이것을 본

대원군은 나라의 기밀을 누설하였다는 죄명을 씌워 그를 옥에 가두고, 목각판 지도를 압수하여 태워버렸다.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감옥에서 숨졌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지도 제작자.

80. 영조대왕

조선의 제21대 왕(재위 1724~1776).

숙종이 양성이라는 헌호를 내렸다. 숙종의 2남으로 어머니는 화경숙빈 최씨. 1699(숙종25) 6세때 연잉군에 봉해지고,

1721년에 왕세제로 책봉되었다. 신문고를 만들었음.

81. 정조

조선의 제 22대 왕(재위 1777~1800).

아버지는 장헌 세자, 어머니는 혜경궁 홍씨. 1759(영조 35)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1762년 아버지 장헌 세자가 비참하게 죽은 뒤, 1775년부터 할아버지인 영조를 대신해서 정치를 보살피다가 이듬해 영조가 죽자 왕위에 올랐다. 영조의 뜻을 이어받아 당파 싸움을 조정 하고 뿌리뽑기 위하여 애썼다. , 탕평책을 써서 인재를 고루 뽑아 썼다. 규장각을 세워 역대의 서적을 보관하고 임진자. 정유 . 한구자. 생생자 등의 활자를 새로 만들어 인쇄술의 발달을 꾀하고, 서적 편찬에도 힘써,'국조보감'. '문원보불'. '규장전운'. '오륜행실' 등을 간행하였으며, 자신의 문집 '홍재 전서'도 완성 하였다. 규장각을 설치, 역대 국왕의 친필과 시문을 보관 관리.

82. 정약용

조선 후기의 학자.

목민심서를 지은 실학자. 최초 거중기 사용

83. 전봉준

조선 후기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아버지가 민란의 주모자로 처형된 후부터 사회 개혁에 대한 뜻을 품게 되었다 녹두장군 동학 운동을 지도했으며 체포되어

처형당함.

84. 김대건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부·순교자. 성인.

85. 황진이

조선 중기의 여류 시인. 기생.

진랑 이라는 이름도 가졌고, 기생으로서의 이름은 명월. 개성 출생. 중종 때 진사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문 공부를

하였는데, 시와 문장이 모두 뛰어났다. 가야금.거문고 등 악기도 잘 다루었고, 얼굴이 예쁜 것으로 더욱 유명. 15세 무렵,

마을의 어떤 총각이 자기를 사모하다가 병들어 죽자, 충격을 받,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생이 되었다. 그 후 이름만 문인.

학자들과 사귀며 뛰어난 글재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의 대학자 서경덕을 자신의 재주와 미모로 유혹하려다

실패하고는 그의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청산리 벽계수야', '동짓달 기나긴 밤에...'등의 시조와 많은 한시를 남겼는데,

황진이와 서경덕, 그리고 박연 폭포를 아울러 '송도 삼절'이라 불리었다. 서화와 가무에 능한유명한 기생.

86. 홍경래

19세기 초 평안도에서 일어난 농민반란 (홍경래 )의 최고 지도자 

출신 지역은 평안도 용강군 다미동.

 

<근대(대한제국시대)>

87. 김옥균

조선 후기의 정치가.

갑신정변을 일으킨 삼일 천하의 주인공. 자객 홍종우에게 살해당함.

88. 안중근

한말의 독립운동가.

한학을 수학했으나 오히려 무술에 더 열중하였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항일의사.

 

<근대(일제강점기)>

89. 이완용

한말의 정치가. 역사에 남을 매국노

90. 윤동주

용정의 은진 중학교와 평양의 숭실 학교를 졸업하고, 1941 연희 전문 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 재학 중 여름 

방학때 귀국하다가 독립 운동에 관련된 혐의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상범으로 투옥되어 옥사함.

그가 죽은  1948년에 그의 동지들이 그가 남긴 원고들을 모아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을 간행.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오자 비로소 알려져 일제 말기의 저항 시인으로서명 해졌다. 대표 작품으로는 '또 다른 고향'.'십자가'.'별 헤는밤'.

'슬픈족속'. '무서운 시간' 등이 있으며, 연세 대학교 안에 윤동주의 시비가 세워졌다.

91. 지석영

조선 후기 종두법을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온 의사이자 국문학자.

92. 손병희

1882(고종 19) 22세 때 동학에 입교, 2년 후 교주 최시형 만나 수제자로서 연성수도 하였다. 3.1운동을 주도한 삼십삼인

일원이자 천도교의 지도자.

93. 유관순

독립운동가 1919 3·1운동이 발발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 시위를 벌였고, 일제총독에 의하여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만세 시위를 지휘하기 위하여 즉각 고향으로 내려갔다. 천안,연기,청주, 진천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협의, 4 1일 아오내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지휘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이때 아버지 중권 과 어머니 이씨는 일본 헌병에게 피살되고, 집마저 불탔으며, 신은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반일항쟁을 하다 옥사한 유관순 열사.

94. 안창호

호는 도산. 한학을 배우다가 서당 선배로부터 신식학문에 눈을 뜨고,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중 청일전쟁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고 깨달은 바 있어 1895년 상경, 구세학당에 들어가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만민공동회, 신민회 등을

조직한 사상가 이자 독립운동가.

95. 방정환

아동문학의 보급과 아동보호운동의 선구자인 아동문학가.

호는 소파. 최초의 아동문화 운동 단체인 색동회, 청년 구락부, 소년 운동협의회 등을 조직.'사랑의 선물'을 짓고 어린이라는

 말을 만든 아동문학가.

96~97. 이수일과 심순애

일본작가 오자키 고요의 '금색야차'를 번안한 조중환 소설 장한몽에 등장하는 가상인물.

이수일과 심순애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근대(대한민국)>

98. 김두한

한국의 정치가.

3·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다. 서울 교동국민학교를 마치고 협객으로 활동하 면서 주먹

왕으로 군림. 일제 강점기 말에는 주먹의 힘으로 민족 적·의협적인 행동을 하였다.

99. 이상

본명 김해경으로 건축과 출신의 불운한 천재시인이자 소설가.

대표적인 작품으로 날개, 종생기 등의 작품이 있다.

100. 중섭

서양화가.

오산 고보 졸업. 일본 도쿄문화학원미술과 재학중이던 1937년 일본의 전위적 미술단체의 자유미 협전에 출품하여 태양상을 받고,

1939년 자유미술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소 그림으로 유명한 현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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