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地天命), 하늘과 땅을 호령할 수 있는 세대. 그러나, 누가 뭐래도 지천명의 세대는 이름없는 세대다. 직장 상사가 명령하면 알아서 말 잘 듣고, 암시만 주면 짐을 꾸리는 세대, 주산의 마지막 세대, 컴맹의 제 1세대, 부모님에게 무조건 순종했던 마지막 세대이자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해 아내와 부모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하고, 그런 일들을 이제와서는 미안해 하는 세대. 이제는 퇴출 세대다.
도시락에 계란하나 묻어서 몰래 숨어서 먹고, 소풍가던 날에는 김밥, 사과 두 개, 계란 세 알, 사탕 한 봉지를 싸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마저 다 먹지 못하고 그 중 사탕 반 봉지는 집에서 기다리는 동생을 위해 꼭 남겨와야 하는걸 이미 알았던 세대였다.
일제 식민지 시절, 6 25를 아파 하던 아버지 어머니, 너희처럼 행복한 세대가 없다고, 저녁 밥상머리에서 빼놓지 않고 얘기 할 때마다 일찍 태어나 그 시절을 같이 겪지 못한 우리들은 누런 공책에 바둑아 이리와 영희야 이리 오너라 나하고 놀자를 몽당 연필에 침 묻혀 쓰다가 잠들던 때도 있었다.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때부터 달달 외웠던 국민교육헌장, 대통령은 당연히 박정희인 줄만 알았고, 무슨 이유든 나라일에 반대하는 사람은 빨갱이라고 배웠으며, 검은 교복에 빡빡머리,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 간을 지옥문보다 더 무서운 교문에서 매일 규율부원에게 얻어맞는 친구들을 보며 나의 다행스런 하루를 스스로 대견해 했었고, 성적이 떨어지면 손바닥을 담임 선생님께 맡기고 걸상을 들고 벌서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더러 턱수염이 거뭇거뭇해진 친구들은 이름없는 국화빵집,제과점에서 여학생과 놀다 학생지도부 선생님께 잡혀 정학을 당하거나, 교무실과 화장실 벌 청소를 할 때면 지나가던 선생님들에게 머리를 한대씩 쥐어 박혀도 시간이 지나면 그게 다 무용담이 되던 그때도 지금의 지천명 세대는 이름없는 세대였다.
4.19 세대의 변절이니 유정회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들이 자동거수기니, 애국자이니, 말들이 분분했고, 각종 뇌물사건 때마다 빠지지 않았고, 간첩들이 잡히던 시절, 말 한마디 잘못해서 어디론가 잡혀갔다 와 고문으로 병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술집에 모여 숨을 죽이면서 들었으며, 잘 쓴 책 한권 때문에 폐인이 되어버린 어느 친구의 아픔을 소리 죽여 이야기 하며 스스로 부끄러워 했던 그 시절에도 지천명 세대는 이름없는 세대였다.
빛깔 좋은 유신군대에서, 대학을 다니다 왔다는 이유만으로 복날 개패듯 얻어 맞고, 탈영을 꿈꾸다가도 부모님 얼굴 떠올리면 참았고, 참다 못해 병신되고 시달려도, 조국 재건에 발판이 되었다고 자부하던 때, 그 시절에도 지천명 세대는 이름없는 세대였다.
쥐꼬리만한 월급쟁이 시절 동료들과 쓴소주 한 잔 곁드리며 아픔 달래던 노총각 시절, 시위대열 속에 끼어 최루탄을 피해왔던 시절 그때에도 지천명 세대는 이름없는 세대였다.
일제세대, 6.25 세대, 4.19 세대, 5.18세대, 모래시계 세대, 자기 주장이 강한 신세대 등. 모두들 이름을 가졌던 시대에도 가끔씩 미국에서 건너온 베이비 붐 세대, 혹은 6.29 넥타이 부대라 잠시 불렸던 시대에도 지천명 세대는 자신의 정확한 이름을 가지지 못했던 불임의 세대였다.
선배 세대들이 첨단정보활용 능력을 꼭 말아쥔 보따리 구걸하듯 풀러서 겨우 일을 배우고, 꾸지람 한마디에 다른 회사로 갈까 말까 망설이고, 후배들에게 잘 보이려구 억지로 신세대 노래 골라 부르는 쉰 세대들. 아직은 젊다는 이유로 후배 세대들을 대변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임금 인상, 처우 개선 등 맡아서 주장하는 세대. 단지 과장, 차장, 부장, 이사 등 조직의 간부란 이유로 조직을 위해, 후배를 위해 회사를 떠나야 하는 세대, 팀장이란 이상한 이름이 생겨서 윗사람인지, 아랫사람인지 알지도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세대, 노조원 신분이 아니여서 젊은 노조원들이 생존권 사수를 외치며, 드러누운 정문을 피해 쪽문으로 회사를 떠나는 세대, IMF에 제일 먼저 수몰된 힘없는 세대, 오래 전부터 품어온 불길한 예감처럼 맥없이 무너지는 세대,
벌써 몇몇 친구들은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에 덜컹 내려앉는 가슴을 쓰러 내리며 눈물 흠치는 세대, 이제 그들은 그들만의 세대 이름 하나쯤 만들어 부르고 싶다. 권력자들 처럼 힘있고 멋지게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평범하게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다 어느날 늘어난 흰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을 삶을 뒤 돌아보니 늙으신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아이들은 성장했지만 제 갈 길이 바쁘고, 다른 길은 잘 보이지 않고, 벌어 놓은 것은 노후를 지내기도 빠듯하고, 일손 놓기에는 너무 이르고, 다시 도전하기에는 이미 늦은 사람들.
50중반을 이미 건너고있고, 60대는 새로운 다리가 놓이길 기다리는 이 시대의 위태로운 다리 위에서 소주 한 잔 마시고 집으로 향하는 늦은 밤, 골목길 포장마차에서 팔지 못해 애태우는 부부의 붕어빵을 한 봉지 사들고 와서 식구들 앞에 내 놓았다가 아무도 먹지 않을 때, 밤늦도록 혼자 우물거리며 먹는 세대들.
모든 사람들이 세대 이름을 가지고 있듯 그들도 그들을 이야기 할 때, 여지껏 이름없이 살아온 세대가 아닌 이제야 당당히 우리만의 이름을 가지게 된 "기막힌 세대"가 바로 이땅의 50대들이다. 고속 성장의 막차에 올라 탔다가 이름 모르는 간이역에 버려진 세대, 이제 스스로가 퇴출이라고 불리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 들여야할 세대다. 아직 사랑할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도, 참 세상이 야속한 세대다.
블로그 박종국(교사,수필가)의 일상이야기에서 인용해 적었읍니다
= TaTaTa 님의 블로그에서 옴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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