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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닦는 아버지의 '메모지 과외' 光났다

shepherd2 2011. 5. 16. 13:27


 

  

구두 닦는 아버지의 '메모지 과외' 光났다

자식이 못 푼 문제들 강남 직장 손님에 부탁
"학원 한번 안 간 아들 신의 직장 입사했어요"
"중졸학력의 무지렁이 아비가 자식들에게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한국일보 | 입력 2011.05.16 02:43 | 수정 2011.05.16 09:18 |

 

 




올해로 19년째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구두를 닦는 김봉희(57)씨는 손님들에게 10년 가까이 짤막한 메모지를 건네고 있다. "미적분 문제를 중간까지 풀었습니다. 답을 찾는 과정을 알려주세요" "이 부분은 해석이 안 돼요" 등 어려운 수학과 영어문법 및 독해 문제를 풀려다 막힌 듯 빈칸이 가득한 메모였다. 손님들은 의아했다.


 

월 180만원에 4형제를 키우는 팍팍한 집안의 가장이 뒤늦게 배움에 목이 말라서가 아니다. 그의 메모지엔 보이지 않는 부정(父情)이 녹아있다. "자식을 가르치고 싶은 맘이야 여느 부모랑 같죠. 배움도 짧고 학원 보낼 형편도 안 되니…."

아들 넷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하다 막히는 문제가 생기면 아버지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는 난감했다. "교사한테는 묻기 애매하다고 하는 질문을 들으니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는 꾀를 내 아들들에게 아침마다 메모지에 질문을 적게 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버지가 일 갔다가 돌아와서 알려주마."

신기하게도 퇴근 후 아버지의 답은 척척박사처럼 청산유수였다. 아버지의 능력(?)을 믿게 된 4형제는 문제풀이가 궁지에 몰리면 아침마다 메모를 남겼다. 덕분에 학습지교사가 된 장남(27)부터 경희대생 둘째(22), 중학생 막내(16)까지 모두 학원 문턱 한번 넘지 않았다.

최근엔 셋째 규진(20)씨가 신의 직장으로 꼽히는 국내 최대 공기업 한국전력에 입사했다. 규진씨는 "예닐곱 번 정도 아버지 메모의 도움을 받았다. 적다면 적은 횟수지만 공부하다 막혀 골몰하던 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사실 김씨는 자식을 위해 부끄러움도 잊고 손님들에게 청탁을 하고 있었다. "능력 없는 아버지다 보니 그런 염치는 일찌감치 없어졌어요. 나중에 메모지의 진실을 알게 된 아들들이 오히려 부끄러워하지 않고 질문이 생기는 족족 메모를 남겨줘 고마웠죠."

처음 청탁을 받고 반신반의하며 답을 하던 손님들은 차츰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애들 가르칠 능력이 안돼 그런다'고 조심스레 메모를 건네면 아예 명함을 주면서 '다음부턴 (아들들에게) 바로 전화하게 하라'고 하는 분도 있었어요. 얼마나 고마운지요."

그가 터를 잡은 트레이드타워는 사무실 200여 곳에 3,000여명이 근무하는 곳이다. "신발 배달 갔다가 '교수님' '박사님'이라 불리는 분들을 눈 여겨 봤다가 수학문제는 A회사, 영어는 외국계 B회사 등으로 집중 공략했지요. 제게 구두를 맡기는 분들이 실은 모두가 제 자식들의 든든한 '과외 선생님'이었습니다."

종종 김씨의 메모에 답을 적어줬던 사업가 강영대(51)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에 나와 열심히 사는 김씨 아저씨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봤다면 누구라도 도움을 줬을 것"이라며 "제가 답해준 메모지보다 아버지의 성실한 모습이 오늘날의 아이들을 있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사무실의 쓰레기더미도 허투루 버리는 일이 없다. 볼펜과 연필, A4 용지 등을 알뜰히 찾아 집으로 가져간다. 현재 그가 신고 있는 신발도 그렇게 구했다. 17세 때 충북 단양의 소백산 자락 집을 박차고 상경한 김씨는 "구두 닦으면 최소한 굶지는 않는다"는 말에 구두닦이를 천직으로 삼았다. 노점상도 해봤지만 수입이 일정치 않아 결국 4형제를 낳은 뒤엔 다시 구둣솔을 잡았다.

"도와주신 분들에게 보답한다는 생각으로 힘 닿는 데까지 정성껏 구두를 닦아야죠." 새까매진 그의 손에 놓인 구두는 세상의 어느 광채보다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