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듣기]20102
2010. 4. 17 토 경복궁 경회루
참 열심히 살았다. 돌이켜보면 IMF 사태가 있었던 그해 겨울.
폐차장으로 갈법 한 낡은 트럭을 구입해 채소행상을 시작한 이래 우리 부부는 수도 없이 찬바람 부는 거리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했다. 번듯한 간판이 걸린 내 가게에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먹어보는 게 소원이던
시절이었다. 수년여 행상 끝에 어렵게 재래시장 안에 채소가게를 내고 간판을 달았다는 기쁨도 잠시, 이미
사양길로 접어든 재래시장에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빚이 늘어난다는 것과 같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요행히 대로변으로 가게를 옮길 기회가 찿아왔다. 또 한 번 빚을 내 가게를 옮긴 후에야 조금씩 빚을 갚아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생물 장사의 특성상 실제 마진은 크지 않은데도 대로변 가게인 탓에 각종 경비의 무게가
상상이상이었다. 집세며 세금 공과금은 물론 부담스러운 카드수수료며 세무기장료 같은 이런저런 준조세급 지출마져
우리를 옥죄었다. 빚이 많아도 집 한 칸 없어도 카드 대출액과 경차두 대. 이미 거의 다 까먹은 알량한 가게보증금
때문에 우리에게 부과되는 의료보험료 또한 장난이 이나었다. 더구나 의료보헌료는 두 아이가 고교 졸업할 때까지
학비 감면한 푼못 받게 했고. 대학생이 된 지금도 국가 장학금은 참새 눈물만큼밖에 못 받게 하는 일등공신이 됐으니.
아파도 병원조차 마음 놓고 가지 못하는 우리로선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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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18 경복궁
그런데 요즘 나는 영 속이 편치 않다. 가진 재산도, 마땅히 보증서줄 사람도 없었기에 지금껏 은행권 대출은
언감생심이었고 늘 고금리의 카드빚이나 사채를 쓰며 살아왔다. 남들 다가는 휴가 따윈 겯눈질하지않고 그야말로
악착같이 한푼 두푼 빚을 갚아왔다. 그것이 도리이고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위한 최선이기도했다.
그런데 지금은 '행복' 이라는 단어로 포장한 제도를 만들어서 연체한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 준다고 한다.
'어려운 사람들이 살길을 열어주기 위해 그렇게라도 해야겠지'생각하다가도 세상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만큼 열심히
일해서 빚을 갚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그냥 맥이 탁 풀린다.
2015. 4. 09 경복궁
나는 누군가 내빚을 탕감해주거나 하는 것은 바란 적도 없었거니와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누가뭐래도
선량한 시민으로서 정직하게 살아왔음에도 흰머리 성성하도록 셋방살이도 면치 못하는판에. 재산을 담보로 빚은 낸
사람들의 빚을 갚아주는이런 황당한 정책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솔직히 내가 가진 상식과 정치권에서
추구하는 상식 사이의 괴리감에서 무척 혼란스럽다. 온 천지에 봄꽃이 피어나 들떠 있는 이봄,
대한민국에서 영세상인으로 산다는 고달픔에 시린 가슴으로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독자가 만드는 조선일보"
아침편지/한숙희(자영업자) 에서 옮김.
이미지와 음악 임의 삽입/ choidk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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