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되돌아 볼까

[스크랩] [교양법률]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Good Samaritan Law)

shepherd2 2013. 6. 20. 23:15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Good Samaritan Law) 

 

 

 

 

 

   글 순서 

 

    * 프롤로그 : 나의 경험 (도덕적 양심과 실정법)

    * 법과 도덕의 관계 (도덕의 법적 강행화의 문제)

    *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Good Samaritan Law)이란?

    * 외국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시행 사례

    * 우리나라 형법상 구조불이행에 대한 처벌관계(부작위범)

    * 우리나라의 응급환자 구조(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규정

    * 에필로그 : 우리도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자 

 

 

 

 

 

프롤로그 : 나의 경험 (도덕적 양심과 실정법)

 

며칠 전 나는 늦은 밤에야 산책길에 나섰다. 밤 11시가 넘은 것으로 기억된다. 집 인근에 있는 공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소 한적한 길이다. 공중전화 부스 부근에 보니 어떤 사람이 가방(큰 여성용 핸드백)을 먼발치에 던져놓고는 머리를 90도로 푹 숙이고 퍽 퍼져 앉아있었다. 잠을 자고 있는 것 같다. 젊은 여자 같았다. 보기에는 술이 많이 취한 것 같다.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였다. 추운 겨울 같아서면 흔들어 깨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자라서 뭔가 걱정되었다. 그런데 흔들어 깨운다고 하더라도 그 뒤가 문제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문스럽고 어쩌면 내가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꺼림칙했지만 그냥 내 갈 길로 갔다. 가면서도 마음이 편치 못해 뒤돌아보고, 뒤돌아보곤 했다. 아마 독자들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더러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가 꺼림칙하게 여겼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여성분을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어떤 위험(추행이나 도난 등)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봤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한 위험으로부터 그 여자를 구조(깨워서 귀가토록 하거나 경찰에 연락하여 안전하게 보호되도록 하는 등)를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지 않았다는 내 도덕적 양심에 거슬렸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다고 실정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경우 우리 법에는 그 책임을 묻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우리의 법제는 타당한가?

 

 

법과 도덕의 관계 (도덕의 법적 강행화의 문제) 

 

여기서 우선, 법과 도덕의 관계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법과 도덕의 관계는 다양한 논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철학에 있어서도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로서 지금까지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여기에서는 교양적 수준에서, 도덕을 법으로의 강행화(규범화)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만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 법과 도덕의 관계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이고 학리적인 법철학적 논의에 대해서는, 라드브루흐의『법철학』(최종고  역, 삼영사, 1판) 제5장 및 심헌섭의 『법철학 Ⅰ- 법‧도덕‧힘』(법문사, 1982) 103쪽 이하를 참조.

 

‘도덕’을 생활세계의 개념이고, ‘법’은 이를 바탕으로 한 공식적인 체계의 개념이라고 한다면, 도덕이 보다 더 시원적(始原的)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은 도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법은 도덕을 강화하고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편 도덕이 흔들리고 타락하게 되면 법질서 역시 위태롭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도덕을 모두 법으로써 강행화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불가능하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 도덕과 부도덕을 획정할 명확한 기준을 찾기도 어렵다. 또한 부도덕을 모두 처벌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도덕을 법으로의 강행화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의문이다. 법이 타율성 반면, 도덕은 자율성을 핵심적 요소로 한다. 도덕은 개인의 자율적 판단과 양심을 원천으로 하지 아니하면 그 힘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법이 과도하게 도덕을 포섭하게 되면 도덕의 핵심인 자율성을 훼손함으로써 도덕의 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도덕의 자율영역에 법(국가 권력)이 과도하게 간섭(통제)하거나 침범하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도덕을 법으로의 강행화는 자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 되어야 한다.


한편 형법(형벌에 관한 모든 법규를 포괄하는 개념-필자 註)은 사회생활에 불가결한 법익을 보호하는 것이 형법 이외의 다른 수단에 의하여는 불가능한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 적용될 것을 요구한다. 이를 형법의 ‘보충성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도 도덕의 영역에 국가의 간섭은 최대한 자제될 필요가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Good Samaritan Law)이란?


그런데 일부 국가에서는, 이러한 경우, 즉 자신이 위험에 빠질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위험에 처한 사람(자기와 아무런 신분적 관계가 없음을 전제로 한다)을 구조하지 않는 경우(Failure-to-Rescue) 이를 처벌하는 법을 통칭하여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Good Samaritan Law)』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라 한다. 그러므로 특정의 제정법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를 하나의 법리(法理)라고 본다. 또한 이러한 법에서도 명백히 잘못된 방법으로 구조하였을 때에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 법의 유래는 다 알다시피, 성경(루가 복음 10장 29~37절)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율법교사가 예수께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면서 “그 세 사람 중에서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이 누구냐?”고 되물으시면서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또 레위사람도 그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소.’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루가 10, 30~ 36)

 

 

 외국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시행 사례


프랑스는 최고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고, 독일, 그리스, 헝가리, 유고슬라비아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으며, 덴마크, 이탈리아, 노르웨이, 루마니아, 체코, 에티오피아는 3개월 이상 6개월 이하의 구류에 처하도록 되어있다. 한편 핀란드와 터키의 경우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 형법상 구조불이행에 대한 처벌관계(부작위범)

 

형벌 체계상 ‘부작위범(不作爲犯)’이란 것이 있다. 법규범에는 명령규범과 금지규범이 있는데, 보통은 금지규범(형법의 대부분이 금지규범으로 되어 있다)에 위반함으로써 범죄가 되지만, 명령규범에 따르지 않음으로써 범죄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명령규범에 위반한 범죄가 부작위범이다. 부작위범 중에서는, 오직 부작위에 의하여만 구성요건이 실현되는 경우(이를 진정부작위범이라고 한다. 예; 퇴거불응죄 등 형법 각칙에 규정되어 있다)도 있지만, 어떤 부작위에 의하여 작위범의 구성요건을 실현하는 경우(이를 부진정부작위범이라 한다)도 있다. 쉽게 말하면, ‘부작위에 의한 작위범’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가장 쉬운 예로, 어머니가 영아에게 젖을 주지 않아 영아를 아사시키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러한 부진정부작위범에 있어서는 부작위가 작위(구성요건)와 동일하게 평가를 할 수 있는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요소 중에서 행위주체(여기에서는 부작위도 형벌체계상 ‘행위’로 평가된다.)가 가장 문제가 된다. 즉 부작위범은 그 부작위로 인한 결과의 발생을 방지해야 할 보증인(保證人)의 지위에 있어야 한다. 보증인이란 다시 말해서 ‘작위의무가 있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행위주체와 피해자 사이의 일정한 관계가 요구되는 범죄를 신분범(身分犯)이라 한다. 그렇다면 작위의무의 발생근거가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작위의무는 법령(法令), 계약(契約), 조리(條理) 및 선행행위(先行行爲)에 의하여 발생한다고 하고 있다.

 

법령(法令)에 의한 작위의무; 법령은 사법(私法)에 한정하지 않고 공법(公法)을 포함한다. 민법상으로는 친권자(親權者)의 보호, 교양의무(제913조), 친족간(親族間)의 부양의무(제974조), 부부간(夫婦間)의 부양의무(제826조 제1항) 등이 있고, 공법상으로는 경찰관직무집행법 제4조에 의한 경찰관의 보호조치의무(保護措置義務), 의료법 제15조에 의한 의료인의 진료거부금지의무, 응급의료법 제6조에 의한 응급의료종사자의 응급의료거부금지의무, 도로교통법 제54조에 의한 운전자등의 사고발생시 구호 등 조치의무 등이 있다.


계약(契約)에 의한 작위의무; 고용계약 또는 근로계약에 있어서 사용자의 보호 또는 안전의무, 간호사의 환자 보호 내지 간호의무 등 계약에 의해서도 작위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민법상의 불법행위가 성립되어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특별한 경우, 즉 피보호자가 신체상의 위해가 초래되어 형법상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 한하여 작위의무가 논하여 질 것이다(사견).


조리(條理)에 의한 작위의무; 통설에 의하면, 조리 또는 사회상규(社會常規)에 의해서도 작위의무가 발생한다고 한다. 예컨대, 관리자의 위험발생방지의무나 목적물의 하자에 대한 신의칙상의 고지의무 등이 그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작위의무는 법적의무이기 때문에 단순한 윤리적‧도덕적 의무에까지 확대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조리에 의한 작위의무는 지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사견).


선행행위(先行行爲)에 의한 작위의무;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는 그 위험이 구성요건적 결과로 진전되지 않도록 해야 할 작위의무가 있다. 우리 형법 제18조(부작위범)는 “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발생된 결과에 의하여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행행위는 객관적으로 의무에 위반했거나 위법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적법행위나 정당방위에 의하여 방위한 자는 작위의무가 없다. 긴급피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선행행위에 의한 작위의무에 관한 대표적 예로서, 나이 어린 조카를 저수지로 데리고 가서 미끄러지기 쉬운 제방 쪽으로 유인하여 걷게 한 자는 물에 빠진 피해자에 대한 보증인이 된다는 사례(대판 1992.11.23. 91도2951)를 들 수 있다. 이 경우 행위자의 방관한 행위(부작위)는 직접 물에 빠뜨려 익사시킨 행위와 다름이 없으므로 살인죄의 죄책을 지게 된다.  (참고: 정성근 총론,법지사 / 이재상 총론, 박영사 / 배종대 총론,홍문사)

 

 

우리나라의 경우 응급환자 구조(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규정

 

우리나라의 경우, 2008.6.13. 법 개정을 통해 신설한『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제5조의 2에 의하면,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종사자 또는 선원법, 소방기본법에 따른 응급처치담당자, 구급대 등 다른 법령에 따라 응급처치 제공의무를 가진 자가 아닌 자가 실시한 응급처치 및 응급의료종사자 또는 선원법, 소방기본법에 따른 응급처치담당자, 구급대 등 다른 법령에 따라 응급처치 제공의무를 가진 자가 업무수행 중이 아닌 때 본인이 받은 면허 또는 자격의 범위 안에서 실시한 응급의료,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해당 행위자는 민사 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 책임을 지지 아니하고 사망에 대한 형사 책임은 감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을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이라고 한다.


위 규정에서 보다시피, 피구조자는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 한한다. 따라서 모두에 언급한 필자의 경우와 같이 우리 주변에 가끔 보이는 구조가 필요할 것 같은 사람에 대하여는 적용가능성은 거의 없다. 물론 이 법은 응급의료에 관하여만 규정하기 때문에 위와 같이 규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미국이나 캐나다 등 외국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 있다고 하여 다 면책이 되는 것은 아니라, 면책이 되는 것은 '표준화된 방법, 보편적인 방법(use of standard procedure)'에 의한 구조 행위를 시행했을 때에만 적용된다고 한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게 잘못된 행위로 구조를 하는 것은 면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필로그 : 우리도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자 

 

모두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도덕을 법으로의 강행화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되어야 한다. 도덕은 개인의 자율적 판단과 양심을 원천으로 한다. 법이 과도하게 도덕을 포섭하면 도덕의 핵심인 자율성을 훼손함으로써 도덕의 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경우,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과 같은 법이 없다고 하여 결코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생명이 위급한 환자에 한하여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리를 제한적으로 원용한 응급의료법의 제정은 합당하다고 할 것이다.


아무튼 우리의 경우처럼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리를 적용한 제정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건전한 도덕적 양심에 따라 보호나 구조가 필요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다면 얼마든지 착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다. 설사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과정에서 다소의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응급의료법뿐만 아니라 형법상의 부작위법에 의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처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거리낌 없이 착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할 것이다. ♣          

 

[편저자 표시] 서노무사실무노동법연구실(서영림)


출처 : 서노무사실무노동법연구실
글쓴이 : 중년의 미학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