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세계

하나의 나뭇닢이 흔들릴 때- 이어령

shepherd2 2008. 10. 20. 11:25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하나의 공간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뭇잎, 한 잎 한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한 세월과 무한한 공간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있는 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 행커치프… 태양과 구름과 소나기와 바람의 증인(證人)… 잎이 흔들릴 때, 이 세상은 좀더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의 욕망에 눈을 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들었다. 다시 대지를 향해서 나뭇잎은 떨어져야 한다. 어둡고 거칠고 색채가 죽어버린 흙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 피가 뜨거워도 죽는 이유를 나뭇잎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생명의 아픔과, 생명의 흔들림이, 망각의 땅을 향해 묻히는 그 이유를… 그것들은 말한다. 거부하지 말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대지는 더 무거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인력(引力)이 나뭇잎을 유혹한다. 언어가 아니라 나뭇잎은 이 땅의 리듬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별들의 운행(運行)과 나뭇잎의 파동은 같은 질서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우리들의 마음도 흔들린다. 온 우주의 공간이 흔들린다. - 이어령의《나뭇잎이 흔들릴 때》중에서 -

                                                
                                                                    모래시계 중 "혜린의 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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