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세계

메밀꽃 필 무렵

shepherd2 2008. 10. 21. 22:56

메밀꽃 필 무렵 ㅡ TV 文學館 [영화 ] choidk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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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ㅡ TV 文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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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TV 文學館 ( 1936년 作 )

이효석 [李孝石]1907~1942

등장인물

▶허생원 : 주인공. 장돌뱅이. 한국 토속 사회의 한 전형적 인물.
▶동이    : 장돌뱅이. 사기없는 순박한 젊은이. 허생원의 아들로 짐작됨.
▶조선달 : 보조인물. 허생원의 친구이며 동업자.


* 메밀꽃 필 무렵

  지금도 여전히 읽히고, 사랑 받는 우리 문학에서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작품성을 떠나 이 작품의 이러한 위치는 무척이나 소중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1936년 <조광(朝光)>에 발표된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영서 지방(봉평)의 시골 장터와 그 지방의 풍물인 '메밀꽃, 장돌뱅이, 나귀, 달빛, 밤길' 등을 배경으로,  떠돌이 장돌뱅이가 반평생을 잊지 못하고
찾아 헤매던 옛 사랑의 여인을 찾고, 뜻밖에 그녀 사이에서 난 아들까지 만나게 된다는 줄거리의 서정적인 단편입니다.

  메밀꽃이 피던 달밤.

 
장을 거둔 떠돌이 장똘뱅이 허생원은 객주집 토방이 너무 무더워 개울가로 나갑니다. 달이 너무 밝은 까닭에 옷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갔다가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칩니다.

  산 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당장이라도 메밀꽃 향기가 풍겨나올 듯 합니다. 달밤의 메밀밭을 배경으로  시적인
묘사가 절묘한 이효석의 서정적 글의 체취와 함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만남과 헤어짐의 구도를 갖춘 이 작품은 유랑인의 삶이 '길'이라는 무대에서 삶의 상징성을 띤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 특히 허생원과 동이의 잃어버린 자기의 뿌리를  찾아가는, 영화로 치면 '로드 무비'(road movie)에 해당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남녀간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친자 확인(親子確認)이라는 두 가지 이야기가 기본 줄기를 이룹니다. 

  이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미묘한 운명을 드러내는 과정에 '길'이 등장합니다. 
그 '길'(봉평에서 대화까지의 칠십리 길)은 낭만적 정취를 듬뿍 머금은 달밤의 산길입니다. 

  물론, 그 길은 허 생원 일행에게는 생업(生業)의 길목이지만, 괴로운 인생의 현장이기보다는 삶과 자연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세계입니다. 여기에 사랑의 추억과 인연(因緣)의 끈질김이 어우러지면서 한 늙은 장돌뱅이의 애환이 전개됩니다.

  허 생원이 술집에 들어가 충주집을 탐내고 있을 때, 그의 당나귀는 암놈을 보고 발정(發情)을 합니다. 

  '늙은 주제에 암샘을 내는 셈야. 저놈의 짐승이….' 하는 아이들의 말소리는 허 생원 자신에 대한 조소처럼 느낍니다. 

  메밀꽃이 하얗게 핀 달밤에 허 생원은 성 서방네 처녀와 꼭 한번 정을 통한 것입니다. 평생 처음이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허 생원이 처녀에게 한 아이를 잉태시킨 것처럼 당나귀는 읍내 강릉집 피마에게 새끼를 얻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당나귀의 까스러진 갈기, 개진개진한 눈은 허 생원의 외양(外樣)과 흡사합니다.

  봉평장의 파장 무렵,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 생원은 장사가 시원치 않아 속이 상합니다. 조 선달에 이끌려 충주집을 찾습니다.

  거기서 나이가 어린 장돌뱅이 '동이'를 만납니다. 허 생원은 대낮부터 충주집과 짓거리를 벌이는 '동이'가 몹시 못마땅합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 계집하고 농탕질이냐고 따귀를 올립니다. '동이'는 별 반항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물러납니다.

  허 생원은 마음이  개운치 않습니다.

  조 선달과 술잔을 주고받는데 '동이'가 황급히 달려옵니다. 나귀가 밧줄을 끊고 야단이라는 것입니다. 허 생원은 자기를 외면할 줄로 알았던 '동이'가 그런 기별까지 하자 여간 기특하지가 않습니다. 나귀에 짐을 싣고 다음 장터로
떠나는데, 마침 그들이 가는 길가에는 달빛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달빛 아래 펼쳐지는 메밀꽃의 정경에 감정이 동했음인지 허 생원은 조 선달에게 몇 번이나 들려준 이야기를 다시 꺼냅니다. 
한때 경기가 좋아 한밑천 두둑이 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노름판에서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평생 여자와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메밀꽃이 핀 여름 밤, 그날 그는 토방이 무더워 목욕을 하러 개울가로 갔었습니다.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성 서방네 처녀를 만났습니다. 

  성 서방네는 파산(破産)을 한 터여서 처녀는 신세 한탄을 하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허 생원은 처녀와 관계를
맺었고, 그 다음날 처녀는 빚쟁이를 피해서 줄행랑을 놓는 가족과 함께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 이야기 끝에 허 생원은 '동이'가 편모(偏母)만 모시고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발을 빗디딘 허 생원은 나귀 등에서 떨어져 물에 빠지고 그걸 '동이'가 부축해서 업어 건너 줍니다. 허 생원은 마음에 짐작되는 데가 있어 '동이'에게 물어 보니 그 어머니의 고향 역시 봉평임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동이'가 자기처럼 '왼손잡이'임을 눈여겨 봅니다.

작성자 해맑음이

 메밀꽃 필 무렵  <본문>

  여름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 떼도 장난꾼각다귀들도 귀치 않다. 얽둑배기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 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 선달에게 낚아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 장에서 한번이나 흐뭇하게 사본 일 있을까. 내일 대화 장에서가 한몫 벌어야겠네.”
  “오늘 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 선달이 그날 번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 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여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 필과 주단 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멍석 위에는 천 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바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장수도 땜장이도 엿장수도 생강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느 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 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장판은 잔치 뒷마당같이 어수선하게 벌어지고, 술집에서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 주정꾼 욕지거리에 섞여 계집의 앙칼진 목소리가 찢어졌다.
 장날 저녁은 정해놓고 계집의 고함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생원, 시침을 떼두 다 아네… 충주집 말야.”

  계집 목소리로 문득 생각난 듯이 조 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화중지병이지. 연소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그렇지두 않을걸. 축들이 사족을 못 쓰는 것도 사실은 사실이나, 아무리 그렇다군 해두 왜 그 동이 말일세, 감쪽같이
충주집을 후린 눈치거든.”
  “무어 그 애숭이가? 물건 가지고 나꾸었나부지. 착실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그 길만은 알 수 있나… 궁리 말구 가보세나그려. 내 한턱 씀세.”

  그다지 마음이 당기지 않는 것을 쫓아갔다. 허 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다. 얽둑배기 상판을 대어설 숫기도 없었으나 계집 편에서 정을 보낸 적도 없었고,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 충주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 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버린다.

  충주집 대문에 들어서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 된 서슬엔지 빨끈 화가 나버렸다. 
상위에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 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제법 난질꾼인데 꼴 사납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 처먹고 계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키고 돌아다니누나.

  그 꼴에 우리들과 한몫 보자는 셈이지. 동이 앞에 막아서면서부터 책망이었다.

  걱정두 팔자요 하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상기된 눈망울에 부딪칠 때, 결김에 따귀를 하나 갈겨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동이도 화를 쓰고 팩하게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 생원은 조금도 동색하는 법 없이 마음먹은 대로는 다 지껄였다. 어디서 주워먹은 선머슴인지는 모르겠으나, 네게도 아비 어미 있겠지. 그 사나운 꼴 보면 맘좋겠다. 
장사란 탐탁하게 해야 되지, 계집이 다 무어야. 나가거라, 냉큼 꼴 치워.

  그러나 한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어 측은히 여겨졌다. 아직두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섬뜩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 손님이면서두 아무리 젊다고 자식 낳게 된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셀 것은 무어야 원. 충주집은 입술을 쭝긋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 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고
하고 그 자리는 조 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면 죄 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이다. 담도 생긴 데다가 웬일이지 흠뻑 취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 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거나해짐을 따라 계집 생각보다도 동이의 뒷일이 한결같이 궁금해졌다.

  내 꼴에 계집을 가로채서니 어떡헐 작정이었누 하고 어리석은 꼬락서니를 모질게 책망하는 마음도 한편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지난 뒤인지 동이가 헐레벌떡거리며 황급히 부르러 왔을 때에는 마시던 잔을 그 자리에 던지고 
 정신없이 허덕이며 충주집을 뛰어나간 것이었다.

  “생원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이에요.”
  “각다귀들 장난이지 필연코.”

  짐승도 짐승이려니와 동이의 마음씨가 가슴을 울렸다. 뒤를 따라 장판을 달음질하려니 거슴츠레한 눈이 뜨거워질 것 같다.

  “부락스런 녀석들이라 어쩌는 수 있어야죠.”
  “나귀를 몹시 구는 녀석들은 그냥 두지는 않을걸.”

  반평생을 같이 지내온 짐승이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 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가스러진 목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곱을 흘렸다.

  몽당비처럼 짧게 쓸리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휘저어보아야 벌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닳아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하였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럽게 울며 반겨한다.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목덜미를 어루만져주니 나귀는 코를 벌름거리고 입을 투르르거렸다. 콧물이 튀었다. 

  허 생원은 짐승 때문에 속도 무던히는 썩였다. 아이들의 장난이 심한 눈치여서 땀 밴 몸뚱어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좀체 흥분이 식지 않는 모양이었다. 굴레가 벗어지고 안장도 떨어졌다. 요 몹쓸 자식들, 하고 허 생원은 호령을 하였으나 패들은
벌써 줄행랑을 논 뒤요 몇 남지 않은 아이들이 호령에 놀래 비슬비슬 멀어졌다.

  “우리들 장난이 아니우, 암놈을 보고 저 혼자 발광이지.”

  코흘리개 한 녀석이 멀리서 소리를 쳤다.

  “고 녀석 말투가…”
  “김 첨지 당나귀가 가버리니까 온통 흙을 차고 거품을 흘리면서 미친 소같이 날뛰는걸. 꼴이 우스워 우리는 보고만 있었다우. 배를 좀 보지.”

  아이는 앙토라진 투로 소리를 치며 깔깔 웃었다. 허 생원은 모르는 결에 낯이 뜨거워졌다. 뭇 시선을 막으려고 그는 짐승의 
배 앞을 가리어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늙은 주제에 암샘을 내는 셈야. 저놈의 짐승이.”

  아이의 웃음소리에 허 생원은 주춤하면서 거어코 견딜 수 없어 채찍을 들더니 아이를 쫓았다.

  “쫓으려거든 쫓아보지. 왼손잡이가 사람을 때려.”

  줄달음에 달아나는 각다귀에는 당하는 재주가 없었다. 왼손잡이는 아이 하나도 후릴 수 없다. 그만 채찍을 던졌다. 술기도 돌아 몸이 유난스럽게 화끈거렸다.

  “그만 떠나세. 녀석들과 어울리다가는 한이 없어. 장판의각다귀들이란 어른보다도 더 무서운 것들인 걸.”

  조 선달과 동이는 각각 제 나귀에 안장을 얹고 짐을 싣기 시작하였다. 해가 꽤 많이 기울어진 모양이었다.

  드팀전 장돌림을 시작한 지 이십 년이나 되어도 허 생원은 봉평 장을 빼논 적은 드물었다. 충주 제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 지방도 헤매기는 하였으나, 강릉쯤에 물건 하러 가는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아다녔다. 닷새 만큼씩의 장날에는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으로 건너간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 삼아 말하였으나 고향에 
돌보러 간 일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반날 동안이나 뚜벅뚜벅 걷고 장터 있는 마을에 거지반 가까왔을 때, 거친 나귀가 한바탕 우렁차게 울면- 더구나 그것이 저녁녘이어서 등불들이 어둠 속에 깜박거릴 무렵이면, 늘 당하는 것이건만 허 생원은 변치 않고 언제든지 가슴이 뛰놀았다.

  젊은 시절에는 알뜰하게 벌어 돈푼이나 모아둔 적도 있기는 있었으나, 읍내에 백중이 열린 해 호탕스럽게 놀고 투전을 하고 하여 사흘 동안에 다 털어버렸다. 나귀까지 팔게 된 판이었으나 애끊는 정분에 그것만은 이를 물고 단념하였다. 
결국 도로아미타불로 장돌림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짐승을 데리고 읍내를 도망해 나왔을 때에는 너를 팔지 않기 다행이었다고 길가에서 울면서 짐승의 등을 어루만졌던 것이었다. 빚을 지기 시작하니재산을 모을 염은 당초에 틀리고 간신히 입에풀칠을 하러 장에서 장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호탕스럽게 놀았다고는 하여도 계집 하나 후려보지는 못하였다. 

  계집이란 쌀쌀하고 매정한 것이다. 평생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신세가 서글퍼졌다. 일신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언제나 변함없는 한 필의 당나귀였다. 그렇다고 하여도 꼭 한번의 첫 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번의 괴이한 인연! 
봉평에 다니기 시작한 젊은 시절의 일이었으나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그도 산 보람을 느꼈다.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두 도무지 알 수 없어.”

  허 생원은 오늘 밤도 또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조 선달은 친구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렇다고 싫증은 낼 수도 없었으나 허 생원은 시치미를 떼고 되풀이할 대로는 되풀이하고야 말았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조 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 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공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 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 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주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 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 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나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 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 가는 일색이었지, 팔자에 있었나부지.”

  아무렴 하고 응답하면서 말머리를 아끼는 듯이 한참이나 담배를 빨 뿐이었다. 
  구수한 자주빛 연기가 밤 기운 속에 흘러서는 녹았다.

  “날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달리 기다리는 놈팽이가 있는 것두 아니었네.처녀는 울고 있단 말야. 짐작은 대고 있으나 성 서방네는 한창 어려워서 들고 날 판인 때였지, 한집안 일이니 딸에겐들 걱정이 없을 리 있겠나? 
좋은 데만 있으면 시집도 보내련만 시집은 죽어도 싫다지…”
  “그러나 처녀란 울 때같이 정을 끄는 때가 있을까. 처음에는 놀라기도 한 눈치였으나 걱정 있을 때는 누그러지기도 쉬운 듯해서 이럭저럭 이야기가 되었네… 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었어.”
  “제천인지로 줄행랑을 놓은 건 그 다음날이렷다.”
  “다음 장도막에는 벌써 온 집안이 사라진 뒤였네. 장판은 소문에 발끈 뒤집혀 고작해야 술집에 팔려가기가 상수라고 처녀의 뒷공론이 자자들 하단 말이야. 제천 장판을 몇 번이나 뒤졌겠나. 허나 처녀의 꼴은 꿩 먹은 자리야.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었지. 그때부터 봉평이 마음에 든 것이 반평생인들 잊을 수 있겠나.”
  
  “수 좋았지. 그렇게 신통한 일이란 쉽지 않어.
항용 못난 것 얻어 새끼 낳고, 걱정 늘고 생각만 해두 진저리나지- 그러나 늙으막바지까지 장돌뱅이로 지내기도 힘드는 노릇 아닌가? 난 가을까지만 하구 이 생계와두 하직하려네. 대화쯤에 조그만 전방이나 하나 벌이구 식구들을 부르겠어. 
 사시장천 뚜벅뚜벅 걷기란 여간이래야지.”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 난 꺼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 테야.”

  산길을 벗어나니 큰길로 틔어졌다. 꽁무니의 동이도 앞으로 나서 나귀들은 가로 늘어섰다.

  “총각두 젊겠다, 지금이 한창 시절이렸다. 충주집에서는 그만 실수를 해서 그 꼴이 되었으나 설게 생각 말게.”
  “처 천만에요. 되려 부끄러워요. 계집이란 지금 웬 제격인가요. 자나깨나 어머니 생각뿐인데요.”

  허 생원의 이야기로 실심해 한 끝이라 동이의 어조는 한풀 수그러진 것이었다.

  “아비 어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제겐 아버지가 없어요. 피붙이라고는 어머니 하나뿐인 걸요.”
  “돌아가셨나?”
  “당초부터 없어요.”
  “그런 법이 세상에…”

  생원과 선달이 야단스럽게 껄껄들 웃으니, 동이는 정색하고 우길 수밖에는 없었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랴 했으나 정말예요. 제천 촌에서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는 집을 쫓겨났죠. 
우스운 이야기나, 그러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고 있는 고장도 모르고 지내와요.”

  고개가 앞에 놓인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내렸다. 둔덕은 험하고 입을 벌리기도 대근하여 이야기는 한동안 끊졌다. 
나귀는 건듯하면 미끄러졌다. 허 생원은 숨이 차 몇 번이고 다리를 쉬지 않으면 안되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이가 알렸다. 동이 같은 젊은 축이 그지없이 부러웠다. 땀이 등을 한바탕 쪽 씻어 내렸다.

  고개 너머는 바로 개울이었다. 장마에 흘러버린 널 다리가 아직도 걸리지 않은 채로 있는 까닭에 벗고 건너야 되었다. 고의를 벗어 띠로 등에 얽어 매고 반 벌거숭이의 우스꽝스런 꼴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금방 땀을 흘린 뒤였으나 밤 물은 뼈를 찔렀다.

  “그래 대체 기르긴 누가 기르구?”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의부를 얻어가서 술장사를 시작했죠. 술이 고주래서 의부라고 전 망나니예요.   철 들어서부터 맞기 시작한 것이 하룬들 편한 날 있었을까. 어머니는 말리다가 채이고 맞고 칼부림을 당하고 하니 집 꼴이
무어겠소. 열 여덟 살 때 집을 뛰쳐나서부터 이 짓이죠.”
  “총각 낫세론 동이 무던하다고 생각했더니 듣고 보니 딱한 신세로군.”

  물은 깊어 허리까지 찼다. 속 물살도 어지간히 센 데다가 발에 채이는 돌멩이도 미끄러워 금시에 훌칠 듯하였다. 
  나귀와 조 선달은 재빨리 거의 건넜으나 동이는 허 생원을 붙드느라고 두 사람은 훨씬 떨어졌다.

  “모친의 친정은 원래부터 제천이었던가?”
  “웬걸요. 시원스리 말은 안 해주나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봉평, 그래 그 아비 성은 무엇이구?”
  “알 수 있나요. 도무지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 그렇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하다가 허 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디디었다. 

  앞으로 고꾸라지기가 바쁘게 몸째 풍덩 빠져버렸다. 허위적거릴수록 몸을 걷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에는 벌써 퍽으나 흘렀었다. 옷째 쫄딱 젖으니 물에 젖은 개보다도 참혹한 꼴이었다. 
  동이는 물속에서 어른을 해깝게 업을 수 있었다. 젖었다고는 하여도 여윈 몸이라 장정 등에는 오히려 가벼웠다.

  “이렇게까지 해서 안됐네. 내 오늘은 정신이 빠진 모양이야.”
  “염려하실 것 없어요.”
  “그래 모친은 아비를 찾지는 않는 눈치지?”
  “늘 한번 만나고 싶다고는 하는데요.”
  “지금 어디 계신가?”
  “의부와도 갈라져 제천에 있죠. 가을에는 봉평에 모셔오려고 생각 중인데요. 이를 물고 벌면 이럭저럭 살아갈 수 있겠죠.”
  “아무렴, 기특한 생각이야. 가을이랬다?”

  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더 업혔으면도 하였다.
  “진종일 실수만 하니 웬일이요, 생원.”
  조 선달은 바라보며 기어코 웃음이 터졌다.

  “나귀야. 나귀 생각하다 실족을 했어. 말 안 했던가. 저 꼴에 제법 새끼를 얻었단 말이지. 읍내 강릉집 피마에게 말일세.
 귀를 쭝긋 세우고 달랑달랑 뛰는 것이 나귀새끼같이 귀여운 것이 있을까. 그것 보러 나는 일부러 읍내를 도는 때가 있다네.”
  “사람을 물에 빠뜨릴 젠 따는 대단한 나귀 새끼군.”

  허 생원은 젖은 옷을 웬만큼 짜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은 알 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주막까지 부지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이 쉬어. 나귀에겐 더운 물을 끓여주고. 내일 대화장 보고는 제천이다.”
  “생원도 제천으로…?”
  “오래간만에 가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니같이 눈이 어둡던 허 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졌다.

  <끝>

 

 * 이효석 [李孝石, 1907 ~ 1942] Profile

호는 가산(可山). 1907년 2월 23일 강원도 평창에서 출생하였습니다.

  평창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5년 경성제대 예과에 입학했습니다.
1930년 경성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취직하였으나 곧 그만 두고 부인의 고향인 함북 경성으로가 영어교사로 일했습니다. 1934년부터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품활동을 펼치다가 1942년 5월 25일 사망했습니다. 

  이효석의 소설들은 대체로 이 도시공간과 카페·백화점·영화관·카바레 등의 근대적 소비기구를 배경으로 한 젊은 도시거주 남녀들의 자유분방한 일상생활과 애정 풍속을 다룬 도시 소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의 문학 세계가 모더니즘적 세련성, 낭만적 심미주의 등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 연구자들의 지적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의 초기의 동반자 작가 시절의 작품도 그것이 막연한, 이국적 세계에 대한 동경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면 평양시절의 이국 취미 서구적 세계에 대한 정신적 편향을 드러내는 소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도시적 세계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온 그가, 그의 문학의 전개 과정에서 강원도 산골의 풍속을 다룬 작품도 몇 편 썼다는 사실은 이례적인 경우에 속합니다. 「메밀꽃 필 무렵」, 「산협」등의 작품이 그것입니다. 이들 세계는 그 배경 인물 등에서 그의 도시  소설과는 여러모로 대조적입니다.

  예과 입학 후에는 학생회지 <<청량>>을 비롯한 잡지와 신문에 시를 발표했고,
1925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시 《봄)이 선외가작(選外佳作)으로 뽑혔으며,
1927년 법문학부 영문학과에 진학한 후에는 문우회지 <<문우(文友)>> 등에 시와 콩트를 발표했습니다. 

  1927년 경향문학(傾向文學)이 활발하던 당시학생으로서 작품을 발표하여, 이효석은 등단 직후 한동안 유진오(兪鎭午)와 함께 동반작가로 활동 하였습니다. 본격적인 작품활동은 1928년 《조선지광(朝鮮之光)》에 자유노동자의 생활을 묘사한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30년 <기우>, <깨뜨려지는 홍등>, <마작철>. 노령근해(露領近海)》 《상륙》 《북국사신(北國私信)》 《행진곡》 등 경향문학적인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그 뒤 32년 총독부 검열계에 근무하다가 비난을 받자 경성(鏡城)으로 가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생활하게 되면서  경향문학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의 본능적인 순수성을 추구하였습니다. 《돈(豚, 1933)》 《수탉(1933)》 등은 그의 문학적 전환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며, 같은 해 구인회(九人會)에서의 활동은
그의 문학적 전환을 공고히 해주었습니다.

 
그의 문학적 입장은 K. 맨스필드·H. 입센·A.P. 체호프 등의 작품을 통해 문학의 기법을 정립하였고, 
문학관에 있어서는 J.M. 싱·D.H. 로렌스 등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이국, 특히 유럽에 대한 동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자의 예로는 36년에 발표한 《들》 《분녀(粉女)》와 장편 《화분(花粉, 1939)》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순수 심미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한 에로티시즘은 이론에 있어서는 로렌스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는 반드시 애욕을 위한 애욕을 그리고자 하지는 않았으며 인간 본연의 것, 건강한 생명의 동력과 신비성을 추구하는
한 방편으로 에로티시즘을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그 밖에 《성수부(聖樹賦, 1935)》 《인간산문(人間散文, 1936)》 《석류(石榴, 1936)》 《개살구(1937)》 《장미 병들다(1938)》 등 수많은 단편이 있으며, 한국 현대문학에 있어 《메밀꽃 필 무렵》 등 단편소설의 대표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장편소설로 《화분》 외에 《벽공무한(碧空無限, 1940)》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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