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내 삶과 문화

'한국 비밀공장'서 만들어진 놀라운 집

shepherd2 2013. 2. 8. 19:15

오전만 해도 사방팔방 열려있던 공장 출입구에 몽땅 자물쇠가 채워졌다. 공장 바깥엔 천을 뒤집어쓴 8~12톤의 육면체(21.78㎡)가 허공에 들려있다. 안전모를 쓴 10여명이 영하 5도의 삭풍을 맞으며 소경 코끼리 만지듯 육면체 바닥을 관찰한다. 심각한 대화도 오간다.

천을 확 걷고 점검하면 후련하련만 공장장은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믿을만한 협력업체 직원들이긴 해도 혹시 밖으로 샐까 봐, 여긴 공장 곳곳이 원천기술이거든요." 위장 취업한 뒤 공장 내부 사진을 몰래 찍던 산업스파이도 여럿 적발했다고 한다.

↑ 모듈러 주택은 우선 경량철강코일을 잘라 뼈대를 만들고(왼쪽 위) 구조체를 제작(왼쪽 아래)한 뒤 소방 통신 배관 등 각종 설비와 인테리어 같은 마무리작업(오른쪽 위)을 해 현장으로 옮겨(오른쪽 아래) 조립한다. 포스코A&C 천안공장은 하루 평균 21.78㎡(6.6평)짜리 모듈

비밀의 공장이라 불리는 포스코A & C 천안공장은 국내에선 거의 유일하게 모듈러(규격부품 조립식) 주택을 만든다. 1,806평(5,972㎡)이나 되는 공장 자체가 16개(1층 10, 2층 6) 모듈러의 합체다. 최근 모듈러 주택을 '개인도 곧 구입할 수 있다'는 소식에 세간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5일 찾아갔다.

'원천기술 덩어리'라 소개한 공장 내부는 관련 분야에 무지한 일반인 눈엔 잘 정돈된 여느 공장과 다를 바 없다. 어려운 전문용어에 대한 풀이를 거듭 부탁하며, 공정 순서를 따라가다 보면 아이들의 블록 놀이가 떠오른다.

예컨대 디자인(도면) 설계는 블록 설명서, 구조체 제작은 블록 쌓기, 자유로운 이동 및 해체, 재사용은 아이들이 장소를 바꿔 놀거나 싫증나면 블록을 떼 새롭게 만드는 것과 흡사하다.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간편한 제작이 특징인 셈이다.

물론 조립식 주택은 전기 통신 난방 등 생활에 필요한 설비들과 회로가 벽 속에 촘촘히 들어차 있고, 방음패드, 내외장재, 창호, 바닥재, 마감재, 가구 등 실제 주택에 들어가는 모든 요소가 최신공법을 따르고 있다는 게 블록과 다르다.

조립식 주택은 우리 시대 건축의 주류인 철근콘크리트(R/C)건물보다 우월하다. 공사기간은 R/C의 절반 수준, 무게는 30%에 불과하고, 화재 대응력(내화)은 1.5배, 수명은 100년으로 R/C(40년)의 두 배 이상, 철골건물(20년)의 5배다. 박우찬 공장장은 "일반강철이 아니라 최첨단 경량철강을 써 무게가 덜 나가면서 더 단단하고, 날씨에 구애 받지 않고 365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다. 표준 도면이 있으니 설계 및 감리비용(1,000만~2,000만원)이 전혀 들지 않고, 비산먼지나 공사 소음 등에 따른 현장 민원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출을 받았다면 공기 단축으로 인한 이자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표준부품만 쓰니 완공 후 하자도 거의 없다. 겉모습이 비슷해 "같은 거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주거용 컨테이너는 애당초 범접을 못한다.

덕분에 영국은 연립주택시장의 60%가 조립식 주택일 만큼 유럽과 러시아, 일본 등에선 인기가 높다. 우리는 2001년 개발, 2004년 신기술 채택, 작년 2월 천안공장 준공이니 한참 늦은 편. 그런데도 지난해 호주와 러시아 등지에 수출하고, 공업화주택인정서까지 받았으니 기술력은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물과 시멘트를 거의 쓰지 않는 건식구조라 바닥 울림(층간 소음)이 신경 쓰인다. 그러나 천안공장 류국무 과장은 "방음패드 설치와 층간 간격 조정을 통해 바닥진동을 일반주택(60㏈)보다 나은 30㏈로 낮췄다"고 했다. 실제 공장 옆 모델하우스에선 바닥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조립식 주택의 3.3㎡당 건축비는 평균 430만원선. 땅값은 제외라 R/C 주택과의 단순비교는 어렵다.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제 땅이 없거나 남의 땅 임대할 능력이 없는 서민에겐 아직 그림의 떡인 게 사실이다. 그래서 기자도 "언젠가는"하고 입맛만 다시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