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내 삶과 문화

현고학생부군... 현대식 개선안

shepherd2 2015. 2. 2. 07:56

지금은 명절이나 제사 때 거의 보편화되어 버린 현고학생부군 신위현비유인 ○○김씨 신위라는 두 구절...

그 뜻을 분명히 알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자세히 알고 나면 기분이 좀 나빠지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알아 둘 필요는 있을 것 같아서 한번 설명을 해 드릴까 합니다.

 

()모습을 나타내다”, ()돌아가신 아버님”, ()돌아가신 어머님을 의미하는 것까지는 이미 다 알고 계실 터이고...

 

관리 출신이라면 숭록대부같은 직급 명칭이 붙었을 것이고 과거 시험의 지방 예비고사라도 합격하였으면 진사” “생원같은 호칭이 붙었으련만..

말단 공무원도 한번 못해 본 백수를 옛날에는 학생(學生)”이라 하였고, 돌아가신 분에게 왕실 종친의 흉내를 내어 씌워 준 감투가 부군(府君)”이었으니 학생부군을 요즘 말로 바꾸면 백수 장관정도가 되는지라...

대한제국 시절에 글자 좀 아는 양반 출신들이 글자 뜻도 모르는 평민 출신들에게 네 까짓 것들이... 꼴에 무슨 제사를 지낸다고....” 하면서 비웃으며 던져 준 명칭으로 보입니다.

 

조선 후기 부패한 양반도 많고 몰락한 양반도 많던 시절, 방랑시인 김삿갓이 거지 행색으로 전국을 떠돌아 다닐 때에 부친 제삿날을 맞이한 어느 시골의 농민이 우리도 양반들처럼 한문 글귀를 하나 모셔 놓고 제사를 한번 지내 보자는 욕심으로 만만해 보이는 김삿갓에게 한문으로 지방을 하나 써 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물론 흔쾌히 승낙하고 지방을 써 주고 잘 대접을 받고 노잣돈까지 받아서 떠나기는 하였지만 양반들이나 지내는 제사를 평민들이 지내겠다는 욕심을 불쾌하게 여긴 김삿갓이 써 준 글자는 단 네 글자...

柳柳花花”.... 버들 류 두 개에다 꽃 화 두 개였는데 그 뜻은 버들버들 떨다가 꼿꼿하게 죽었다라는 것이었지요. 아무리 거지 행색을 하고 다녀도, “제사는 양반들만 지낸다고 하는 국법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 양반 출신 김삿갓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십년 후 일본이 쳐들어 와서 대한제국을 세우게 하고 호적법을 개정하면서 양반과 평민의 경계를 없애려고 한 것이 전 국민의 양반화로 변질되어 버려서 이제는 너도나도 우리도 제사란 것을 한번 지내보자현상이 일어났지요.

 

이 때 본래 양반의 후손이 아닌 사람들이 갑자기 제사를 지내려 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현고 학생부군 신위란 걸 만들어 준 모양인데 얼핏 보면 제법 형식도 갖추고 점잖아 보이는 글이기는 하나 사실은 김삿갓의 柳柳花花나 별반 차이 없는 글입니다.

 

대한제국 이후에는 꼭 공무원 아니라도 잘 먹고 잘 사는 직업이 많아서 공무원 못해 봤다는 이유로 이렇게 비아냥거릴 것까지는 없는데, 진짜 양반 출신들 눈에는 똑같이 놀려고 하는 그들이 그저 아니꼽기만 했나 봅니다.

 

이런저런 속사정을 잘 모르는 평민 출신 깜짝 양반들은 할아버지도 학생부군, 아버님도 학생부군... 줄줄이 백수임을 무슨 자랑인 양 집집마다 다들 쓰게 되었지요.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님이나 할머님은 종9품 말단 공무원 부인의 첩지인 유인(孺人)”으로 승격시켜서 모시는 걸로 지방을 만들어 주었는데, 사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후손들이 함부로 승격시킬 수가 없는 직급 명칭입니다.

 

여태까지는 내막을 몰랐으니까 무심결에 그냥 따라서 사용했다고 쳐도 속사정을 알고 난 후에야 도무지 찜찜해서 쓸 수가 없는지라, 몇 가지 개선안을 만들어 보았으니 바꾸실 분들은 이를 참고하여 한 번 바꾸어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현고 전주이공 몽룡선생 신위 - 현비 창녕성씨 춘향여사 신위

顯考 全州李公 夢龍先生 神位 - 顯妣 昌寧成氏 春香女史 神位

(조상님들의 본관이나 성함을 후손들에게 알려 주는 데에 도움이 되어 무난한 편이고)

 

현고 이공몽룡 신위 현비 성씨춘향 신위

顯考 李公夢龍 神位 - 顯妣 成氏春香 神位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방식인데, 간단하고 쉬워서 역시 무난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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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황재순(문학박사, 인천 부개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