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손이나 가방
그리고 책상 위에 손 거울이 없으면 불안해 한다.
이와 같은 습관은
정식으로 미국 직장에서 일을 할 때부터 생긴 것으로 기억이 된다.
한창 일에 몰두하다가도 잠시 멈추고는
바로 옆에 놓아둔 손 거울을 수시로 꺼 집어 들곤 했다.
혹시 눈곱이 끼었거나 콧물이 말아 붙었나
혹은 이빨에 음식물 찌꺼기 라도 끼어있나 하고..
나는 늘 그런 식으로
나를 수시로 점검하는 것이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 되다 보니
가방 속이나 주변에 거울이 없으면 불안하고 안절부절 해 한다.
이런 습관을 두고
세간 (世間) 에서는 결백 증이다 혹은 완벽주의 자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습관 덕택에
내가 결코 미인이 아니라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를 채게 되어
무리한 건방은 자제할 줄 안다는 점이 다행으로 여긴다.
더 나아가
거울이란 사람의 겉 모양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기는 하지만
내가 원하는 모양과 사상에 대한 수정은 물론
사람의속까지 비추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깨우칠 수 있었다.
순전히 남의 시선과
내 결백 증 때문에 시작 된 거울보기가
언제부터 거울 속의 여자와 대화가 시작된 것은,
어느 날 거울 안에 있는 나를 보는 순간
내가 ‘젊음’ 이라는 것과 결별을 하기 위한 강력한 면역체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 이였다.
그때부터
아침에 화장을 마치고 나면 거울 속에 있는 나를 향해
“괜찮아 아직 볼 만하다 너 …” 하면서 집을 나섰다.
그러고 나면 진짜 하루 종일 괜찮은 여자처럼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마치 누가
내 등을 두드려 주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확인 시켜주듯
스스로 그런 식의 자기최면을 걸곤 했다.
*
사십 대에서 오십 대로 접어들면서
모든 생활 자체가 나를 지치게 했다 .
가정이 만들어지고 자식도 낳아 기르면서
가정과 사업을 병행하는 실정에서 적당한 선에서
꼬여진 매듭을 풀고 올 바른 선택을 위한 고민 등을 조율하면서
사는 삶이 결코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자란
힘들고 지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마음뿐만 아니라
여자라는 형체까지 파괴가 된다.
이제는
‘중년’ 혹은 ‘햇 노인’ 이라는 소리에 기겁을 하던 때 마저 그리워하게 되자
기꺼이 자기 최면 수위도 조금씩 높이게 된다.
*
요즈음은
거울 속으로 샤워를 하고 나오는 나이든 여자를 바라보며
서슴지 않고 “ 어머, 아직도 괜찮은 데 뭐….”
꽤 노골적인 응원까지 해댄다.
*
화장을 하고 나면 살아 있다는 느낌이
예전 보다 조금씩 줄어들어 상실감마저 생겨지면
여자라는 것을 포기하고 주저 앉게 될까 불안한 나머지
더 강력한 항생제를 투여하게 된것이다.
누구 할 것 없이 늙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기엔 아직 내 의식이 살아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거울 속의 나를 향해 “너를 믿는다” 라는 채찍질을 해야 하는 것이다.
육십이 되면 어떻고
설령 구순 그 이후까지라 살아있기만 한다면
난 끝까지 거울 속 여자를 향해
최면을 걸어주는 응원 군으로 남을 것이다.
(본 이미지 삭제하고 다른 이미지 올림)
"어머 !! 당신 여전히 멋지군요…..”
글,사진/ 작성
이
슬
(미 중불방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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